"기념비적 결의안" 평가...플라스틱협약 탄력 전망
환경문제로 치부돼 세계보건총회에서 외면받던 '플라스틱 오염'이 건강위협으로 인정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29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 주최 제76차 세계보건총회(WHA)에서 '인체 건강에 대한 화학물질, 폐기물, 오염의 영향' 결의안이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페루를 필두로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등 40여개국이 공동서명한 이번 결의안은 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첫 사례다.
플라스틱은 다양한 경로로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소각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한 보건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립으로 생태계 전반에 퍼진 미세플라스틱은 음식과 음료에 섞이고, 플라스틱 용기나 식기류에서도 떨어져나와 인체내 혈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체내 침투한 미세플라스틱은 내장기관 내 세포 기능을 저해시키거나, 내분비계 수용체에 끼어들어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유에서까지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면서 신생아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학계에서 이같은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지만, 정작 WHO는 플라스틱 오염이 환경문제이기 때문에 인체 건강에 대한 주제로서는 적합하지 않고, 코로나19 팬데믹, 말라리아, 결핵 등 질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미뤄왔다. 결국 대부분의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건강 문제에 대한 연구는 WHO나 국제기구의 인증없이 진행되고 있어 각국의 보건당국은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나 모니터링을 선뜻 정책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WHA에 참가한 페루 대표단은 다국적기업이 수은을 활용해 페루에서 벌이고 있는 불법 금 채굴사업으로 페루 열대우림의 대기중 수은농도가 전세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고통받는 원주민들의 사례를 들어 화학물질로 인한 생물다양성 및 환경파괴는 인체 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로써 그간 WHO의 입장에 따라 유지되던 WHA의 전반적인 기조가 뒤집히면서 결의안이 통과됐다.
결의안에는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이 플라스틱을 비롯해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우려에 대해 부족한 정보를 보강하고, 해당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각국 보건당국에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협약이 성사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출할 것을 독려했다.
이는 29일(현지시간)부터 프랑스 파리에 173개국이 모여 진행중인 국제플라스틱협약 2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2)와 맞물려 각국의 플라스틱 생산규제 강화 움직임에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페루 대표단의 베르나르도 로카-레이는 "환경, 건강, 기후, 생물다양성은 개별 주제가 아닌 하나의 축으로 이해돼야 한다"며 "이번 결의안은 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물질 오염의 인체 영향을 WHO의 정식 의제로 올려놓은 기념비적인 결의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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