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부산 세계지질과학총회서 최종 결정
플라스틱, 닭뼈, 방사성폐기물 등으로 뒤범벅된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 표본지역이 선정됐다.
11일(현지시간) 35명의 지질학자로 구성된 '인류세워킹그룹'(AWG)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 호수'를 인류세의 표준층서구역(GSSP·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and Point)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GSSP는 국제층서위원회(ICS)가 전세계 지질연대의 경계를 가늠할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한 구역이다. 구역의 표식이 황금색 못을 박아넣은 모습을 닮아 '황금못'(Golden Spike)으로도 부른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활동으로 지층에 현격한 변화가 나타남에 따라 별도의 지질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으로 개념화됐다. 실제로 처음 핵실험이 시작된 1945년을 기점으로 방사성동위원소 농도에 큰 변화가 생겨났고, 한 해에만 600억마리의 닭뼈가 땅속에 묻히거나, 에베레스트산 꼭대기부터 마리아나 해구 심해 끝자락까지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등 인간에 의해 지질환경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이에 2009년 결성된 AWG는 인류세가 시작된 시기와 GSSP를 특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16년에 핵실험이 시작한 1950년께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잡은 AWG는 이날 △일본 규슈섬 벳푸만 해양 퇴적물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퍼드 호수 진흙층 △호주 플린더스 산호해 산호 △발트해 고틀란드 분지 해양 퇴적물 △남극 팔머 빙핵 얼음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빌호 퇴적층 △중국 지린성 쓰하이룽완 호수 진흙 △폴란드 수데테스산맥 늪지 토탄 △ 멕시코만 웨스트 플라워가든 뱅크 산호 등 지난해 12월 총 9곳으로 좁혀진 GSSP 후보지 가운데 최종 후보지로 '크로퍼드 호수'를 낙점했다.
크로퍼드 호수는 2.4헥타르(㏊)로 면적이 크진 않지만, 깊이가 24m에 달한다. 호수 밑바닥은 외부 환경과 완전히 차단돼 있고, 위로부터 천천히 가라앉는 침하물만 그대로 퇴적층에 쌓인 상태다. 1952년 수소폭탄 실험부터 1963년 핵실험 금지조약에 이르기까지 플루토늄 낙진의 농도,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입자들과 화학용 비료 사용량 증가로 나타나는 질산염 농도의 차이 등 호수의 퇴적층은 연도별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인간활동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GSSP를 최종 후보지를 크로퍼드 호수로 선정한 AWG는 올여름 ICS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에 인류세를 공식화하기 위한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소위원회 60% 이상이 찬성하면 ICS로 넘어가 표결에 부쳐지고, 여기서도 60%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내면 인류세 공식 비준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인류세에 대한 최종 표결은 내년 8월 부산에서 개최될 제37차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인류세가 승인되면 빙하기 이후 1만1700년 동안 이어져온 '홀로세'(Holocene)가 막을 내리고, '신생대 제4기 인류세 크로퍼드절'에 살게 될 전망이다. 지질시대는 '대-기-세-절'로 구분되는데, 현재 우리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에 살고 있다.
AWG 위원장 콜린 워터스 영국 레스터대 명예 교수는 "인류세는 1950년대 이후 인류가 지구 전체에 끼친 급격한 변화를 특징짓는다"면서 "인류활동의 복합적인 영향이 나쁜 쪽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좋은 쪽으로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며 "인류세의 도래가 환경적 재앙이 불가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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