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마음 가지면 삶이 버겁지 않아
한 대학 선배는 주기적으로 뒷산 산책을 하고 등산과 섬 여행을 즐긴다. 사업을 하는 그는 서울 인근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숲과 자연을 가까이 하며 살고 있다. 오래전 백두대간을 종주한 것이 자연친화적인 삶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부인과 아들을 잃고 망연자실해 삶의 의욕을 잃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백두대간으로 데리고 갔다. 향로봉에서 지리산까지 690km를 종주하며 밤낮을 보냈다. 땀과 눈물이 섞이고 빗속에서 홀로 울기도 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2년을 백두대간과 전국의 산들을 오르내렸다. 그 선배는 어느날 이렇게 말했다. "산을 오르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거야." 삶의 여정이 그리 평범하지 않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간소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는 그의 내면세계는 순수하고 서정적이다.
◇ '단순한 삶'에 대한 추구
최근들어 단순한 삶(simple lif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간소하게 살고 일하고 소유하고 존재하는 삶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단순성, 청빈, 간소함, 느림의 미학, 생태적 삶, 게으르게 살기,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이름으로 주류적 사회 흐름과 사뭇 다른 자신들만의 삶을 추구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현대사회의 풍요와 복잡성에 대한 반작용이자 보다 나은 삶 혹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자조적 모색일 것이다.
사실 '단순한 삶'에 대한 열망은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수 천 년동안 다양한 종교 및 철학 전통을 통해 이어져온 것이다. 동서양의 여러 종교들의 수도자, 탁발승, 은둔자, 영성가들과 스토아학파의 사상가들은 금욕적 삶의 이상을 추구하고 가르쳤다. 그들은 구원, 자기완성 혹은 깨달음,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 물질적 소유와 세속적 인연을 멀리하고 모든 관능적 쾌락을 거부했다. 그리고 엄격한 생활방식과 성스러운 수행에 집중했다.
19세기의 철학자들과 루소를 비롯한 낭만주의 예술가들도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고 고독한 삶과 산책 혹은 걷기를 예찬했다. 그들은 자연과 고독과 걷기는 놀라운 치유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의 간소함의 추구는 이러한 흐름들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 특유의 소외 경험에 대한 자기 치유 혹은 셀프 처방인 셈이다. 그 실천 목록들은 실로 다양하다; 자연을 가까이 하기, 산림욕이나 숲 경험, 산책, 도심의 공원이나 정원 거닐기, 도보 여행, 탬플 스테이, 등산이나 야외 캠프, 수련이나 마음 챙김, 독거하기, 잡 노마드, 적게 벌고 적게 쓰기, 디지털 미니멀리즘 등등. 이런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고 회복을 경험한다. 복잡하고 소모적인 사회의 역동을 벗어나 자연 상태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을 읽는 독자들은 소로의 숲속 생활이야기에 깊이 매료된다. 1845년 3월 어느 날 소로는 친구가 빌려준 도끼를 들고 월든(Walden) 호숫가의 숲으로 들어가 백송나무 한 그루를 잘랐다. 그는 통나무로 홀로 살 오두막을 지었다. 거기서 그는 씨를 뿌리고 자급자족하며 사색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월든>은 그의 일기모음으로 숲 생활의 이야기와 사색의 조각들을 담고 있다. 소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조용한 절망'의 상태로 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그의 선택은 깨어있는 한 개인의 탈주이기도 하지만 당시 자본주의적 도시 문화와 탐욕에 대한 시민적 저항이기도 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간 자신의 충동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온전히 내 뜻대로 살되 삶의 본질을 직접 마주하고 싶어 숲으로 들어갔다.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과연 내가 터득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 올바르게 살지 못했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갔다."
◇ '유목민' 그 경쾌한 삶의 지혜
프랑스 지식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미로; 지혜에 이르는 길>에서 현대인들은 그 출구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미로를 걸어가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갇히지 않고 미로를 헤쳐 나가기 위해 옛 유목민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막막해 보이는 유랑길을 생산적인 경로로 만들고 해방을 경험하며 미로를 잘 통과하기 위해서다. 그는 유목민들이 지닌 덕목을 경쾌성, 환대, 경계 감각, 연대성으로 보았다.
첫째, 유목민은 경쾌하다. 유목민은 정주하지 않는다. 늘 이동하므로 짐이 가벼워야 한다. 유목민은 자신이 접하는 새로운 사유, 경험, 지식, 교류를 자기 신체에 쌓는다. 하지만 성을 쌓지 않는다. 지켜야 할 영토가 따로 없다. 초원을 가로지르며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둘째, 유목민은 만나는 이가 누구든 환대하고 다른 이들에게 개방적이고 정중하다. 그들의 생존 여부는 환대에 달려있다. 부드러운 관계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특정지역을 지나갈 수도 없고 우물에 다가갈 수 없다. 그들은 선물을 주며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 줄 안다.
셋째, 유목민은 세심하게 경계하는 감각이 있다. 그들의 캠프는 탁 트인 곳에 있으며 성벽도 함정도 없이 허술하다. 하지만 야생의 짐승이나 악의적인 적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유목민은 언제나 진영을 거두어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돌연히 나타나는 적과 대항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넷째, 유목민은 연대적이다. 혼자서 길을 가는 유목민은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함께 이동하고 유랑한다. 노마드는 유목공동체이다. 연대의식을 체계화하고 함께 유목하지 않고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생존하기 힘들다.
10여년 전 거실에 앉아 신문을 읽다가 동화작가 권정생 씨의 운명 소식을 접했다. 가족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권정생 씨가 돌아가셨대, 너무 슬퍼." 알다시피 권정생 씨는 한평생 안동 촌구석에서 움막같은 집에서 살았다. 시골교회 종지기로 더부살이 하면서 일하기도 했다. 그를 직접 만나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과 언어가 너무 맑고 순수해 놀랐다고 한다.
그는 '몽실언니'를 비롯한 많은 동화작품을 남겼는데 언제나 땅과 흙 이야기를 하고 생명과 평화를 노래했다. 권정생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작은 자, 소수적인 사람, 흙수저들이 그려내는 별빛같은 이야기들이다. 그의 유언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세는 어린이로부터 얻어졌으니 어린이에게로 돌려줘야 하고, 5평짜리 흙담집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나를 기념하는 일은 일체 하지 말라." 권정생,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소박한 삶의 여행자였다.
우리 모두가 숲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연을 가까이 할 수는 있다. 유목민처럼 목축을 하거나 유랑하며 살기도 어렵다. 하지만 제국의 변방에서 유목하는 노마드적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 각자에게 어떤 결핍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보다 심각한 독소는 넘쳐나는 과잉과 복잡함이 아닐까. 내 삶을 보다 단순하게 하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갈 순 없을까?
1851년 어느 날, 소로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 우리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바로 '여행'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역사란 결국 '어디'(somewhere)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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