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홍수, 산불 등 최근 전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후재난에 대해 볼커 튀르크(Volker Türk) 국제연합(UN) 인권최고대표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면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이미 다가왔다"고 우려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1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현재 전세계 상황을 이렇게 규정하면서 "환경을 약탈하는 자들의 면책특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튀르크는 "최근 이라크 바스라라는 곳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한때 대추야자가 운하를 따라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가뭄과 불볕더위, 극심한 오염, 빠르게 고갈되는 담수 등으로 잔해와 먼지가 쌓인 황량한 풍경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기근으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기후변화는 희망과 기회, 가정과 삶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발생한 전세계적인 기후재난을 두고 '국가 인권 비상사태'라고 규정했다.
특히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합의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화석연료 퇴출은 절실히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난민과 기아 등 여러 인권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튀르크 인권최고대표는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렇다보니 이주민 사망자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6월 그리스 앞바다에서 발생한 난파선 사고로 6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을 포함해 올해 지중해에서 2300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고 지적했다.
튀르크 인권최고대표는 또 "영국해협, 벵골만, 카리브해, 미국-멕시코 국경, 사우디 국경에서 지금도 이주민이 사망하고 있다"며 "유엔인권사무소 차원에서 엄중히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에코사이드'(Ecocide)라는 용어가 사용돼 눈길을 끌었다. 에코사이드는 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죽이다, 학살이라는 뜻의 사이드(cide)가 합쳐진 말로, 환경오염이나 기후재난으로 인한 대량 인명피해를 일컫는다.
튀르크 인권최고대표는 "22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건이 대표적인 예"라며 "3년이 지난 지금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비극과 관련된 인권침해를 조사하기 위한 국제사실조사단을 발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환경을 심각하게 약탈하는 사람과 기업의 면책에 대응해야 한다"며 "에코사이드를 국제 범죄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기만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새로운 기술의 도움으로 거짓과 허위 정보가 대량 생산되어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기득권 엘리트의 이익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중 가장 명백한 사례는 기후변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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