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한 편의점 프렌차이즈가 곤혹을 치뤘던 '남혐' 논란이 이번엔 게임업계를 발칵 뒤집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주말 새벽부터 게임사에서 줄줄이 공식 입장문을 내놓고 문제가 된 영상과 일러스트를 잇따라 비공개 처리했다.
27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를 비롯해 '던파 모바일', '블루 아카이브', 스마일게이트 '에픽세븐', '아우터플레인', 님블뉴런 '이터널리턴' 등 국내 주요 게임들의 공식 커뮤니티에 "프로모션 영상(PV) 내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조치하고 있다"는 내용의 입장문과 사과문들이 게재됐다.
발단은 지난 25일 메이플스토리가 리마스터 패치를 적용한 캐릭터 '엔젤릭버스터' PV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PV에선 엔젤릭버스터가 안무 도중 엄지와 검지를 구부리는 동작을 하는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 동작이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이자 '메갈리아'를 뜻하는 제스처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났다.
메갈리아는 현재 폐쇄된 여성우월주의적 커뮤니티로, 논란이 된 손 모양은 과거에는 '약간의 차이'나 '조금' 등을 뜻했지만 현재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메갈리아의 공식 로고이자 한국 남성의 성기를 희화화한 남성혐오적 손 동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021년에도 GS25와 치킨업체 BBQ 등의 홍보 포스터에 해당 손 모양이 들어가면서 남혐 논란이 일어 디자인을 변경하고 사과문을 올리는 소동이 일어난 바 있다.
의혹이 커지자 누리꾼들은 해당 영상을 제작한 업체로 눈길을 돌렸다. 이 영상을 제작한 곳은 애니메이션 영상전문기업 스튜디오 '뿌리'로 수 년동안 다양한 게임사들과 협업해 게임 홍보용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해왔다. 그런데 스튜디오 뿌리 소속 팀장으로 알려진 A씨가 소셜서비스(SNS)에서 남성혐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을 다수 남겼다는 점이 포착돼 논란에 불을 지폈다. 논란이 커지자 A씨는 SNS를 폐쇄했다.
이에 누리꾼들이 해당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여러 PV와 일러스트 등을 확인해본 결과 논란의 손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다수 확인됐다. 이 중에는 과거 넥슨이 배급했던 게임 '카운터사이드', 네오위즈 '브라운더스트2', 심지어 해외 기업인 호요버스에서도 같은 상황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각 게임사들은 말그대로 '비상'이 걸려 발빠른 조치에 나섰다. 게임산업 전반적으로 남성 소비자의 비중이 커 관련 기업들이 더 빠르고 예민하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메이플스토리 운영진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엔젤릭버스터 PV를 비공개 처리했고 곧바로 "해당 홍보물은 더는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최대한 빠르게 논란이 된 부분들을 상세히 조사해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심지어 메이플스토리 김창섭 디렉터는 직접 긴급 유튜브 방송을 통해 "불편을 느꼈을 이용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논란이 된 영상뿐만 아니라 해당 스튜디오와 협업한 모든 작업물을 전수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마찬가지로 넥슨이 배급중인 던전앤파이터의 이원만 총괄 디렉터는 "불쾌한 감정을 주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문제가 된 범위가 넓을 수 있기 때문에 빠짐없이 검토하겠다"고 공지했다.
블루 아카이브 김용하 총괄PD는 관련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게시글에서 "영상 홍보물 중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포함된 점을 확인했다"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영상들에 대해서는 진위 확인과 빠른 조치를 위한 비공개 처리가 완료됐다"고 강조했다.
스마일게이트 에픽세픈의 김윤하 PD도 "PV 영상의 일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조사중"이라면서 "관련 리소스 조사 및 비공개 조치를 진행 중이며,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별도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님블뉴런 이터널리턴 운영진은 "부적절한 표현이 확인돼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며 "타인에 대한 혐오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밝히며 애니메이션부터 일러스트까지 모든 저작물에 대해 전수 조사를 단행하겠다고 공지했다.
문제의 영상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는 공식 SNS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믿고 일을 맡겨주신 업체들, 이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스태프 발언 모두 확인했으며, 게임의 방향성과 전혀 관계없는 이런 발언들로 해당 영상이 연관되게 한 점 정말 죄송하다"면서 "해당 스태프가 작업했던 컷은 리스트업해 각 게임사에 전달했고 후속조치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다만 해당 손동작에 대해선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아니다"며 "해당 스태프는 키 프레임을 작업하는 원화 애니메이터로 모든 작업에 참여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원청사가 괜찮다면 의혹이 있는 장면은 책임지고 수정하겠다"며 "해당 스태프는 앞으로의 수정작업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은 물론 현재 작업하고 있던 것도 회수해 폐기하고 재작업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해당 손동작이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동작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와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다. 한 장의 일러스트가 아닌 동작과 동작을 잇는 애니메이션이다보니 손 모양이 바뀌면서 우연히 나온 장면이란 것이다.
이에 디자인업계 한 관계자는 27일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지난 GS25 논란 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디자인 업계 전체가 해당 문제에 상당히 민감한 상황"이라며 "요구받은 내용이나 디자인적인 의도가 없는 이상 논란이 될만한 요소는 최대한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원화 단계에서부터 해당 제스처가 들어갔다는 건 충분히 의심될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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