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에게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과 같은 공간이 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가 쓴 화제의 소설이다. 1970년대 노스캐롤라이나 해변의 습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자연의 빛깔과 냄새가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아름다운 비경을 지닌 곳이다. 그러나 버려진 땅이다.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버려진 사람들, 도망자, 잊혀진 사람과 사회적 루저들. 그들은 가재와 같다. 뒷걸음질에 익숙하고 가재걸음으로 도망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도주와 은폐에 익숙하며 숨 막히는 침묵 가운데 살아간다.
주인공 카야는 가재류 집안의 딸이다. 카야의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 상이군인으로 술에 취하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를 견디다 못한 엄마와 오빠들이 차례로 집을 떠난다. 생존본능에 따라. 어린 카야 혼자 남게 된다. 아버지는 딸을 방치한다. 버려진 땅에서 버림받은 한 소녀, 카야는 일곱살이다. 마침내 아버지조차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서 카야는 광활한 습지에서 채집을 하며 홀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생존본능에 따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늪지 깊은 곳에 있다. 아무도 모르는 숲 속 깊은 곳에 버려진 통나무집, 카야는 그곳을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 부른다. 그곳은 직면한 위험을 피하여 '꼭꼭 숨는' 곳이다. 카야는 위험을 감지하면 들어가 숨는다. 자신을 포획하려는 자, 낯선 사람을 피하여 숨는 안식처다. 거기서 카야는 안심하고 안식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테이트와 읽기공부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열네살이 되도록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카야에게 남자친구 테이트는 글을 가르친다. 카야는 마침내 글을 깨치고, 어릴 때 그림으로만 보았던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고, 이윽고 습지와 생태에 대한 전문서적도 읽는다. 시를 읽고 직접 쓰기도 한다. 그곳은 '책 읽기 오두막'으로서 카야가 책을 읽는 장소이다. 독거 상태에서 책을 읽으며 지혜를 터득한다. 야생의 소녀가 문명의 언어를 섭취하고 세상을 점점 알아간다.
낡은 판잣집에 홀로 사는 여자, 마을사람들의 편견과 냉대를 받는 마시걸 카야, 반딧불 반짝이는 '그곳'이 있었기에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버려진 소녀에서 지혜로운 생태작가로 변신해 간다. 소설 말미에서 어맨다 해밀턴이라는 필명의 시인으로 시를 발표한 카야의 비밀이 열리는 순간 독자는 희열을 느낀다. 광활한 습지, 낡은 판잣집, 비원 속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아름다운 인간 카야를 탄생시키는 자궁이 되었다. 늙은 카야는 테이트와 함께 여생을 그곳 습지에서 살며 보트 위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공부의 벗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어디냐고. 어떤 이는 '가정'이라고, 다른 이는 '자기 방'이라고. '작업실' 혹은 '봉사활동을 하는 자리' '기도실' 등등 다양하게 대답했다. 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나에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어딜까? 내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책 읽고 글 쓰고 홀로 머무는 고요한 카페다. 거기서 나는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는다. 거기서 나 자신을 만나고 세상을 본다. 가볍고 단단해져서 카페 문을 나선다.
회색 정글과도 같은 오늘날의 도시 그 어디에도 가재가 노래할만한 곳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스스로 그런 곳을 찾지 않는다. 삶이 거칠고 고단하기 때문에 찾는다. 들뢰즈가 말했듯이 도주선은 새로운 영토를 만든다. 그곳이 어느덧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 되고, 거기 익숙해지면 더는 불안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다시 일어설 힘과 야생의 위험을 맞설 용기를 얻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연결과 소통의 과잉은 소외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토마스 머튼이 말했듯이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우리는 고독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홀로 머무는 그 성소에서 우리는 고요한 기적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반딧불빛으로 그곳을 안내한다.
"밤이 내리자 테이트는 다시 판잣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호소에 다다랐을 때는 높은 캐노피 밑에서 발길을 멈추고 습지의 어두운 비원으로 손짓해 보르는 수백 마리의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깊은 곳,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으로."
당신에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어딘가? 반딧불빛 따라 찾아간 거기서 우리는 모든 껍질을 벗어던지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으리.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