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춤추는 별' ...카오스가 던지는 의미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3-18 09: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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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노래 Permission to Dance는 춤추는 자유를 노래한다. BTS는 춤추는 스타들이다.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BTS와 열광하는 아미 및 관중은 춤추는 별들이 된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춤추는 별이란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춤추는 별'은 그 유행의 넓이와 비례해 얕아졌다. 알려지고 대중화된 만큼 가볍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 은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춤추는 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텍스트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책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등장한다.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너희는 아직 그러한 혼돈을 지니고 있다." [정동호 역, 책세상, p.24]

독일어 원문은 '​Man muss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ären zu können'이다. 영어로는 'You need chaos in your soul to give birth to a dancing star'로 번역된다.

◇ 혼돈에서 춤으로

혼돈(chaos)을 지닌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불안상태나 심리적 혼란상태를 지칭하는 걸까? 이 문장과 이어지는 문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와 정반대의 인간 유형, 즉 혼돈을 지니지 않은 인간에 대해 거듭 말한다. 이들은 '인간말종'이다. 이들의 특성은 정연함과 무거움이다. 그들은 '우리는 행복을 찾아내었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이들은 조심조심 행동하는 도덕군자들이기도 하다. 질병의 상태를 죄악시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혼돈이 있거나 의심을 품는 것을 죄 혹은 악으로 여긴다. 한 마디로 주어진 안정적인 '질서'와 체계성을 따르며 거기 안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귀찮고 힘든 일을 싫어하고, 조촐한 환락에 빠져살며, 끔찍이도 건강을 생각하는 가축의 무리에 비유된다. 이들이 "우리는 행복을 찾아내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의 덕에 익숙해져 사실상 노예의 상태인데도 자신은 거기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말종의 삶에서 혼돈은 터부시 되고, 개성이나 새로운 시도는 제거대상이 된다.

'춤추는 별' 은유가 가리키는 것이 무언인지 쉬 말하긴 곤란하다. 문학적 메타포는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구멍이 많은 언어로 이뤄져 있어서 하나의 의미나 이미지만 지칭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들은 미래의 어떤 '성취'나 삶의 역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위로하는 말로 삼기도 한다. '나의 내면의 이 혼돈은 춤추는 별을 낳을 거야', '나의 이 불안과 고통 뒤에는 위대한 성공과 성취가 뒤따를 거야', '나는 춤추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자조론적으로 이해하고 자기 위로를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니체 텍스트 전체의 맥락에 따르면 이는 오독으로 보인다. 아마 차라투스트라는 '나의 말을 괴상하게 어릿광대처럼 해석하는구나'라고 반응할 것 같다.

니체 텍스트의 문맥에서 혼돈은 새로운 생성과 관련된다. 자신 속에 혼돈을 지닌 자는 시도한다. 주어진 상태를 벗어나 넘어서고 나아가 올라가려 한다. 그 혼돈 상태에서의 몸부림을 통해 새로운 생성과 창조가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혼돈은 위버멘쉬를 낳는 무중력의 자궁상태와 유사하다. 이 혼돈의 힘으로 '위버멘쉬에 이르는 층계'(p.34)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 춤의 무대, 높은 곳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에는 '춤'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춤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 -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이제 나는 가볍다. 나 날고 있으며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야 어떤 신이 나로 인해 춤을 추고 있구나." -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진정 차라투스트라는 태풍도 회오리바람도 아니다. 그리고 그가 춤꾼이라고 할지라도 타란툴라 춤을 추는 춤꾼은 더 이상 아니다." - 타란툴라에 대하여
"나는 일체의 사물에게서 저들은 차라리 우연이라는 발로 춤을 추려한다는, 저 행복한 확신을 발견했다." - 해 뜨기 전에
"춤 한 번 추지 않은 날은 아예 잃어버린 날로 치자! 그리고 큰 웃음 한 번 동반하지 않는 진리를 모두 거짓으로 간주하자!" -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오, 생명이여, …… 너는 춤을 추지 못해 안달을 하는 나의 발에 눈길을 주었지. … 너 작은 손으로 캐스테네츠를 고작 두 차례 쳤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발은 벌써 춤을 추겠다고 널뛰듯 했지…" - 춤에 부친 또다른 노래
"나의 덕은 춤추는 자의 덕이라면, 그리하여 내가 자주 두 발로 황금과 에메랄드의 황홀경 속으로 뛰어들어가 보았다면…" - 일곱 개의 봉인

이 외에도 여러 문장들에서 '춤'이라는 단어가 춤추고 있다.

춤추는 별의 춤은 높은 곳에서 추는 춤이다. 제3부에 있는 '중력의 악령'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배움의 과정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 언젠가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밧줄 사다리로 허다한 창문에 오르고, 민첩한 발을 통해 높은 돛대에 오르기도 했다고 말한다. 항해중인 배 위에서 흔들리는 밧줄 오르기와 맨발로 돗대 기둥을 잡고 올라가는 고투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그는 "나는 다양한 길과 방법으로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늘 길을 묻고는 했지만' 이윽고 "직접 그 길에게 물어가며 길을 가려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고 자신의 방법론의 핵심을 말한다. 지도를 따라가지 않고, 길을 만들며 새로운 지도를 그리며 나아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이렇게 선언한다. "시도(experiment, 실험)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이런 배움의 길을 고려한다면 자기 안의 카오스는 단지 삶에서 겪는 불편함이나 마음의 혼란과 같은 심리적 동요와는 거리가 멀고, 별의 춤 역시 찬란한 역전이나 대박 이미지와는 별 연결점이 없어보인다.

'춤추는 별'은 하늘 높은 곳에서 춤추는 높이의 차원과 춤이라는 행위로 움직이는 운동의 차원과 행복과 환희로 충만한 유희의 차원이 있다. 중력의 무거움에 길들여진 이들은 올라갈 수도 춤출 수도 없다. 책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그 춤은 높이 올라가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의 환희와 몸짓을 지칭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추구한 경지는 '자신과 자신의 별들을 내려다보는 경지'다(제3부, 나그네). 따라서 춤추는 별은 차라투스트라 자신을 지칭하기도 하고, 한편 무리 정신에서 벗어나 기꺼이 카오스를 선택하고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카오스가 그 출발점이며, 춤은 그 카오스의 정점이자 폭발이다.

◇ 춤추는 별 되기

이 춤은 삶의 춤이자 존재의 춤이다. 디오니소스적 춤이기도 하다. 이 춤은 가축의 춤과 다르다. 사실 가축은 춤추는 법을 잊어버렸거나 배우지 못했다. 지친 육체를 잠시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안과 초초를 안고 살아가는 낙타나 당나귀의 축제는 춤의 제전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채찍과 먹이에 길들여진 삶이다. 이 춤은 촘촘히 짜진 거미줄 안에서만 재빨리 움직이며 먹이를 낙아채는 타란툴라(독거미)의 춤과도 전혀 다르다.

'춤추는 별'의 춤은 신체적인 춤과도 밀접하다. 춤이란 몸으로 추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BTS는 춤추는 스타들이다. 다른 한편 원텍스트에 따라 엄밀하게 본다면 '춤추는 별'은 기획이나 연출에 의한 공연이나 음악적 열기와는 결이 다르다. 그건 지속되는 삶의 춤이자 존재의 춤이기 때문이다. 이 춤은 무거움을 강요하는 율법들과 명령하는 모든 힘들을 벗어나는 저항의 춤이며, 대지에 충실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운명처럼 닥쳐오는 온갖 고통과 한계를 뚫고 나아가는 자기 극복의 어떤 지점에서 절로 일어나는 춤사위다. 그러므로 춤추는 별의 이미지는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의 춤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자기 자신을 생성해 나가고 구성해 나가는 어린 아이의 유희적 몸짓이다. 위버멘쉬란 춤출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춤추는 별들이 어우러져 빛나는 별들의 성좌를 이룬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춤추는 별처럼 사는 이들이 적잖다. 중력의 무거움과 시대적 유행과 강요되는 행동의 규준을 깨뜨리고 경쾌하게 춤추는 이들 - 예술가, 노동자, 정치인, 기술자, 학자, 작가, 언론인, 장애인, 봉사자, 사회활동가, 영성가, 무명의 창작자와 삶의 노마드들, 우리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영혼의 자유와 강인한 의지와 숙련된 지혜의 향기를 맡는다.

춤추는 별을 껴안아보자. 은유를 삶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춤추는 별이 도래하기를 기다기보다 스스로가 춤추는 별이 되는 일, 그것이 '춤추는 별'의 행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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