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지구] '쓰레기가 자원'이 되는 현장을 가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4-03-2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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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11편] 수퍼빈 '아이앰팩토리' 탐방
폐페트로 순도 99.9%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수퍼빈의 재생원료 생산공장 '아이엠팩토리' 전경 (사진=수퍼빈)


"와~ 여기가 생산공장 맞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외관이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이곳은 투명페트병으로 재생원료 '플레이크'를 생산하는 순환경제 스타트업 수퍼빈의 '아이엠팩토리' 공장이다.

지난해 4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아이엠팩토리'는 연간 1만톤 규모의 '플레이크'를 생산할 수 있다. 우리가 먹고 배출한 투명페트 음료병이 모두 이 회사에서는 원자재인 셈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플레이크는 순도 99.9%의 고품질 플라스틱 원료들이다. 신재 플라스틱 원료와 품질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페트 쓰레기는 아이엠팩토리의 150m 길이의 공정을 거치면서 이물질과 불순물 제거를 수차례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겨와 쭉정이를 걸러내 불순물없는 알곡을 얻어내는 과정과 흡사해보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페트 선별과 분쇄, 세척, 이물질 제거 그리고 재생플레이크 생산까지 하나의 공정으로 만든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폐자원 수거부터 재자원하는 전 과정이 순환경제 생태계의 핵심"이라며 "수퍼빈은 순환경제의 가치를 실현하고 증명하기 위해 수거로봇 개발부터 재생원료 생산까지 직접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U형 건물구조···'순환경제 철학을 담았다'



아이엠팩토리는 폐기물 재활용시설이지만 여느 재활용시설과 외관부터 크게 달랐다. 건물구조도 U형이다. 수퍼빈 관계자는 "U자형 건물로 지은 이유는 한쪽으로 들어온 폐기물이 새로운 가치를 더해 다른 한쪽으로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U자형 건물 가운데는 숲길처럼 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정원의 나무들도 모두 재건축아파트 현장에서 버려질 뻔한 것들을 옮겨다 심었다고 했다.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아이엠팩토리의 정체성을 담아놓은 정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숲길같은 정원을 지나 아이엠팩토리 정문을 열고 들어섰다. 분명 재활용시설인데 공기가 쾌적했다. 3층으로 올라가 안쪽으로 쑥 들어가자, 축구장 2개 남짓한 4000평 면적에 '전처리-분쇄-세척-건조-선별'로 이어지는 U자형 공정설비를 통유리 너머로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소음이 전혀 없었다. 물론 2층 높이의 설비가 있는 공간은 쉴새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들렸지만, 재활용시설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악취나 분진은 전혀 없었다.

숲을 지나 중앙동에 들어서면 전시공간, 공정무역 원두만을 취급하는 카페와 유기견 보호시설 등이 어우러져 공존과 문화의 공간이 펼쳐진다. 아이엠팩토리가 단순한 공장이 아닌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복합문화시설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중앙동 3층에는 페트병 수거와 선별, 물류와 적재, 소재화 공정, 재생원료 생산에 이르기까지 수퍼빈이 구현한 순환경제 사이클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 마련돼 있다. 페트병 수거와 선별은 '네프론' 로봇이 담당한다. 콩팥의 세포단위를 뜻하는 네프론은 혈액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신장처럼 9000만장의 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를 기반으로 뚜껑, 라벨 등 페트 외 재질을 선별해서 깨끗한 페트병만 수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네프론은 전국에 1100여대가 설치돼 있다. 기종별 차이는 있지만 네프론 1대는 페트병 800개를 담을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페트병은 권역별로 필드마스터가 하루에 1번 이상 수거해서 전국 18개 자원순환창고에 보관한다. 자원순환창고에서는 철사를 활용해 페트병을 베일(페트병 2만5000개, 약 600kg) 단위로 묶어 아이엠팩토리로 보내진다.

▲페트병 수거로봇 '네프론' 앞에서 수퍼빈의 순환경제 체계를 설명하고 있는 김정빈 대표 ©newstree



◇12번 도정 거쳐 탄생한 '순환경제의 쌀'



전국에서 아이엠팩토리로 들어온 베일은 지게차에 실려 '베일 브레이커'라는 설비로 옮겨진다. '베일 브레이커'는 베일을 감싸는 철사를 끊고, 페트병을 흐트러뜨린다. 끊어낸 철사도 재활용한다. 흐트러진 페트병은 곧장 '라벨 스트리퍼' 공정으로 이동한다. 원통형에 여러 개의 핀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인 '라벨 스트리퍼'는 네프론이 미처 선별하지 못한 라벨을 찢는 역할을 한다.

라벨 스트리퍼를 통과한 페트병은 빠르게 돌아가는 4개의 컨베이어 라인으로 보내진다. 각 라인마다 설치돼 있는 AI 카메라는 이물질을 빠르게 걸러낸다. 실제로 기자가 라인 위로 명함을 던져넣으니 라인 하단 사출구에서 바람이 나와 걸러냈다. 컨베이어 라인을 거친 페트병은 '분쇄룸'으로 향한다. 분쇄룸에서는 페트병을 잘게 자른다. 이 과정에서 먼지나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도록 물속에서 공정이 진행된다. 이를 습식분쇄라고 한다.

습식 분쇄를 마치면 비중분리를 통해 PP나 PE 재질의 뚜껑이나 라벨조각들을 다시 걸러낸다. 밀도가 높아 물 밑에 가라앉은 페트 조각은 끝으로 라벨에 묻어있던 접착제를 제거하는 공정을 거친다. 가성소다를 넣고, 열을 가해 세척한 뒤 탈수하는 과정을 4번에 걸쳐 반복한다. 탈수가 끝나면 건조를 통해 수분기를 쫙 빼고, 최종적으로 광학선별기를 통해 미세한 이물질과 철조각을 또 걸러낸다.

모두 12단계의 공정을 거친 페트병은 마지막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플레이크'로 만들어진다. 포대에 담긴 쌀을 연상시키는 '페트 플레이크'는 시간당 1.5톤, 1년에 약 1만톤 규모로 생산된다.

▲왼쪽 위는 수거된 페트병은 4개의 컨베이어 라인을 타고 선별되는 공정, 오른쪽 위는 파쇄된 페트병의 세척공정, 왼쪽 아래는 소재가 다른 조각을 다시 걸러내는 공정, 오른쪽 아래는 광학선별 과정 ©newstree



◇ "고품질 재생원료···중소기업만으로 역부족"



아이엠팩토리에서 생산되는 '페트 플레이크'는 환경부로부터 '식품용기 재생원료 생산확인서'를 획득했다. 과일을 담는 시트 등 포장재, 화장품 용기에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페트병에서 다시 페트병으로 재활용되는 '보틀투보틀'을 구현하려면 페트 플레이크를 더 고운 알갱이로 갈아 균일한 물성을 갖춘 '페트 펠릿'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에 대해 수퍼빈 김정빈 대표는 "내년 하반기 순창에 제2의 아이엠팩토리를 지어 페트 펠릿을 연 2만톤 규모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수거부터 소재화까지 완전한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를 매듭짓고 '보틀투보틀'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거부터 소재화까지 완벽한 폐쇄된 사이클인 '클로즈드 루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수거 단계에서부터 유색 페트병이나 제대로 세척되지 않아 불순물이 심하게 섞인 페트병을 받아들이게 되면 펠릿으로 페트병을 만들기 위한 섬유를 뽑아내다가도 뚝뚝 끊어지는 등 원료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밝혔다.

▲600kg 단위로 묶여져 들어오는 베일(좌)과 최종 생산된 '페트 플레이크' ©newstree


김 대표는 더 많은 '클로즈드 루프'를 구축하기 위해 대기업 참여가 필수라고 주장했다. 2030년까지 재생 펠릿 수요는 최소 10만톤으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물리적 재활용은 3년간 중소기업만 할 수 있도록 지정돼 있어 대기업 참여가 막힌 상태다. "수거부터 소재화 공정까지 약 400억원이 투입되므로 중소기업에서 조달하기 힘든 자금"이라며 "대자본이 참여해 수거체계 혁신이 일어나면 재생원료 시장도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했다.

현재 대기업이 매진하고 있는 화학적 재활용은 전과정평가(LCA)가 적용되기 시작하면 수출장벽을 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화학적 재활용 공정 대부분이 고온·고압 조건에서 불순물을 태워버리고, 유분만 남겨 다시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공정이기 때문에 탄소배출량이 오히려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수퍼빈 공정은 기존 페트 신재 생산공정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무려 78% 적다.

이같은 강점을 인정받아 최근 미주개발은행(IDB) 주관 '파나마시티 자원순환시설 구축 사업'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1200억원 규모 '파나마 고형폐기물 관리 프로젝트'까지 연계될 수 있어, 한국의 우수한 폐기물 처리 및 자원순환 기술이 남미 권역 폐기물 처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빈 대표는 "보틀투보틀 시장이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면 의류재활용 순환체계인 '패브릭투패브릭' 시장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 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한 탄소저감 실적이 인정되면 자발적탄소시장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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