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20일(현지시간)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미국의 기후정책가 대거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취임하는 20일 오후 12시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행됐던 친환경 정책을 상당수 철회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우선 트럼프는 전세계적인 '탈탄소' 흐름을 역행해 친(親)화석연료 정책으로 노선을 변경할 예정이다. 그는 대선과정에서 미국 석유 대기업들에게 10억달러의 선거기부금을 요청하면서 자신이 백악관에 복귀하면 환경규제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내렸던 신규 석유시추금지 조치도 철회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량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자 2023년부터 LNG 최대 수출국이다. 케이플러 선박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LNG 수출량은 8690만톤으로, 전년보다 72만톤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석유시추 방식도 환경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프래킹(fracking) 공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프래킹은 암반에 액체를 고압으로 주입해 균열을 내는 공법으로, 이 과정에서 사용된 화학물질이 식수를 오염시킬 수 있고, 메탄 등 대기오염물질을 방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지진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2023년 미국은 생산한 원유 가운데 64%에 해당하는 약 30억배럴을 이 공법으로 채굴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신규 유전의 약 95%가 프래킹 공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만큼 미국의 LNG 수출 인프라 규모가 확대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비용을 낮추고자 시장 공급량을 늘리게 되면 기업의 수익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후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또 탈퇴하면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 거버넌스가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국가들의 탄소감축 의지를 떨어뜨리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 미국을 따라 기후행동에서 이탈하는 국가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눈치를 보면서 기후목표를 보류하는 국가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손바닥 뒤집듯하는 기후정책으로 인해 화석연료 투자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 이후에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게 되면 기후정책은 다시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던 영국 버밍엄대학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다음 대선에 또 민주당이 이기고 다시 상황이 역전돼 4년 안에 자금이 끊기고 사업이 불법화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기업이 투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원조도 끊겠다고 엄포다. 이는 유엔 인권이사회 등 주요 국제기구를 통해 환경·인권운동가들에게 가는 지원을 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2017년 집권할 당시에도 해외원조를 3분의1 이상 삭감하려다가 의회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같은 시도를 하게 된다면 공화당이 다수당이어서 큰 반발없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광물 및 에너지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에 저항하는 원주민과 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묵인하고 이들의 인권보호도 외면할 수 있다. 이 경우 동맹국들과 맺은 광물 파트너십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핵심 광물에 의존하는 청정기술과 방위 산업이 겹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안보 목표를 유지하면서 에너지 전환 지원을 중단하는 결정은 위험할 정도로 잘못된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완전히 해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 인수위원회는 IRA법을 백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IRA 보조금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어서 IRA 백지화를 반대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가 기후정책을 철회하더라도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1~66%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IRA가 그대로 유지되고 화석연료 규제만 폐지하는 것만으로도 2035년까지 배출량 감축량이 31~51%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청정기술 혁신을 위한 R&D 및 인프라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면 미국은 청정에너지 경쟁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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