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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3월 12일부터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국내 수출효자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도 만지작 거리고 있어 국내 산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만약 한국산 반도체와 자동차에도 관세 부과가 결정된다면 미국 현지에 생산라인이 아직 가동되지 않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가 자동차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 6838억달러(약 994조4040억원) 가운데 대미 수출액은 1277억9000만달러(약 185조7683억원)다. 전체 수출규모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7% 정도다. 대미 수출액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 바로 자동차다.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된 자동차 규모는 약 49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반도체 수출규모는 자동차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5조6000억원이다.
이에 따라 관세가 부과되면 자동차 품목이 더 큰 타격을 입겠지만 실제로 국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대부분이 현지공장에서 이미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170만8293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68만대가 현지에서 생산된 자동차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는 2006년부터 미국 앨라배마주에 연산 33만대를 갖춘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기아는 2009년부터 조지아주에서 연산 35만대의 생산공장을 가동중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기종은 투싼, 싼타페, 싼타페 하이브리드, 싼타크루즈, 제네시스 GV70과 GV70 전동화 모델, 기아 스포티지, 쏘렌토, 텔루라이드, EV9 등이다.
여기에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연산 5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조지아에 짓고 있다. HMGMA에서는 전기차 '아이오닉5'를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잘 팔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하이브리드 차량도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캐파는 더 커지게 된다.
HMGMA까지 본격 가동되면 현대차의 미국 생산캐파는 110~120만대로 늘어나게 된다. 미국의 연간 판매물량 170만대 가운데 최대 120만대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자동차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현대차는 소나타 등 한국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30% 물량에 대해서만 관세를 물게 된다. 타격이 없지는 않지만 심각한 수준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분석이다.
반면 아직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완공하지 못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품목은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위탁제조) 공장을 운영중이고, 2026년 완공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파운드리 공장 일부 라인을 메모리 양산으로 변경할 수 있으나, 추가 자본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처는 어려울 전망이다.
SK하이닉스 역시 2027년 양산을 목표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HBM 패키징 공장을 건설중이다. 당장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적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지 생산량을 쉽게 늘릴 수 없는 반도체 업계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아직 관세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바가 없기 때문에 별도의 움직임은 없다"면서 "내부에서 상황을 예의주시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제조공장을 늘리는데 관세를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백악관은 지난 2일 설명자료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건설한 HMGMA를 '관세 카드 효과의 모범사례'로 꼽았다.
이처럼 국내 대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주력 생산공장을 줄줄이 미국으로 옮기게 된다면, 대기업 협력사까지 동반 이동할 가능성도 높아서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는 크게 취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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