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는 이변을 만들었다.
15일(현지시간)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아카데미(AMPAS)는 오는 4월에 개최되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후보로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를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 여우조연, 감독, 각본,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로 지명했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미국명 리 라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다.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 남부 아칸소주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가 제작한 미국 독립영화지만, 한국배우인 윤여정과 한예리가 출연하고 한국어가 영화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한국영화' 대접을 받고 있다.
'미나리'에서 가장 제이콥을 연기한 스티븐 연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할머니로 출연했던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영화 '미나리'는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 미국 주요 영화제와 비평가협회상에서 91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 중 32개가 윤여정의 여우조연상이었다.
이 때문에 윤여정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은 일찌감치 점쳐졌다. 그러나 오스카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골든글로브'에서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오스카 후보에서도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후 영국 아카데미에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면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됐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는 120년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라는 점에서 국내 영화계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배우 데뷔 50년차인 윤여정은 74세의 나이에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에서 역사의 한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후보로 나란히 올라간 마리아 바카로바(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 올리비아 콜맨(더 파더), 어맨다 사이프리드(맹크) 등과 트로피를 놓고 다투게 됐다.
남우주연상에 이름을 올린 배우 스티븐 연도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5살에 캐나다로 이민한 뒤 미국으로 이주한 스티븐 연은 미국 TV시리즈 '워킹데드'에서 글렌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제9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부문에 출품됐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과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에 출연한 바 있다. 스티븐 연은 리즈 아메드(사운드 오브 메탈), 채드윅 보스만(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앤서니 홉킨스(더 파더), 게리 올드먼(맹크) 등과 남우주연상을 놓고 겨루게 됐다.
최고상인 작품상 부문에선 '미나리' 외에 가장 유력한 경쟁작인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로 꼽힌다. 중국 출신의 젊은 감독인 클로이 자오는 '노매드랜드'로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부터 독보적인 수상 기록을 써왔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더 파더', '맹크', '주다스 앤드 더 블랙 메시아', '프라미싱 영 우먼', '사운드 오브 메탈',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등 8개 작품이 겨룬다.
감독상 부문에서는 작품상 부분과 마찬가지로 중국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동시에 후보에 오르며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웨이브'가 확산하는 추세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와 비슷한 양상이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서 시작해 아카데미 4관왕까지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있었고,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38) 감독의 '페어웰'이 또 다른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백인 일색으로 비난받았던 연기상 부문에서도 변화가 눈에 띈다. 총 20명의 연기자 후보 중 고(故) 채드윅 보스먼(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과 '미나리'의 윤여정, 스티븐 연을 비롯해 리즈 아흐메드(사운드 오브 메탈), 다니엘 칼루야와 레이크리스 스탠필드(주다스 앤드 더 블랙 메시아), 레스리 오덤 주니어(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 비올라 데이비스(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앤드라 데이(미합중국 대 빌리 할리데이) 등 9명이 유색인종이다.
이에 외신들은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미나리'를 두고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미나리는 역사적인 오스카 후보"라며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미나리'가 신기원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도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맹크'에 이어 "한국계 이민자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가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공동 2위를 차지했다"고 전했고, 로이터통신은 "1980년대 미국에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오스카 후보 지명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지는 "미나리는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가족 이야기이지만, 이민자들이 어떻게 미국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예년보다 두달 정도 연기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4월 25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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