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재선충 천적백신 있는데도 '싹쓸이 벌목'...왜?

백진엽 기자 / 기사승인 : 2021-08-11 19: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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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한 나무는 화력발전소용 펠릿으로 제작
산림청, 15년전 개발된 천적백신 승인 안해
▲재선충에 감염되지 않은 소나무들까지 싹쓸이 벌목한 거제도 숲. ⓒ 최병성

소나무재선충을 사멸할 수 있는 천적백신이 있는데도 재선충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멀쩡한 나무까지 베어내는 싹쓸이 벌목이 자행되고 있다.

11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거제도에 있는 석유공사 비축기지의 숲이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이유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차별적으로 잘려나갔다.

현장을 취재한 최병성 목사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지침에 따르면, 재선충에 감염되어 고사한 나무가 전체 나무 대비 30% 이상이어야 모두베기를 할 수 있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재선충 감염 나무는 10%도 안되는 듯했다"면서 "재선충 감염이 심각해 모두베기를 하더라도 소나무만 벌목해야 하지만 재선충과 상관없는 아름드리 활엽수까지 벌목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벌목한 다음에 피복제를 덮어 공기이동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독성이 강한 약제로 훈증해야 하는데 피복제가 찢겨지거나 벗겨진 채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는 것. 이는 엄연히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지침을 위반한데다 이런 상태로 방치되면 재선충이 오히려 주변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또 벌목된 소나무들은 2cm 이상의 나뭇가지들까지 모두 처리해야 하지만 이것 역시 땅에 파묻히거나 계곡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찢어지고, 구멍 뚫리고, 벗겨져 있는 훈증포. 벌목현장에는 독성 강한 약제까지 노출돼 있었다. ⓒ 최병성


최병성 목사는 "과연 재선충 감염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벌목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잘려나간 나무들은 거제 석유기지 벌목 현장에서 1시간여 떨어진 경남 고성에 위치한 '신영포르투'라는 공장 마당에 쌓여있었다"고 말했다. 벌목한 나무들은 톱밥으로 분쇄됐고, 이 톱밥들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곳에서 썩은 물이 흘러나와 바다로 유입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영포르투는 모회사인 신영이앤피로부터 벌목 나무를 공급받아 화력발전소 납품용 펠릿을 만드는 공장이다.

최 목사는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천적백신을 통해 78%까지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는데도 산림청은 이를 활용하지 않고 싹쓸이 벌목을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충남대 성창근 교수가 이미 15년전 곰팡이를 이용해 개발한 소나무재선충 천적백신을 개발했고,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에서 천적백신에 대한 실험도 진행한 바 있다.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은 1mm 크기의 실같이 생긴 선충으로, 스스로 이동 능력이 없어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등의 매개충을 이용해 이동한다. 솔수염하늘소는 몸에 약 1~3만 마리의 선충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이 소나무를 갉아 먹을 때 나무에 침투한다. 소나무에 침투한 재선충은 20일 이후에 20만 마리로 증식하며, 소나무의 가도관(수분의 통로)을 막아 소나무를 고사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천적백신을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에 주사하면, 천적백신이 실처럼 가늘게 재선충의 머리와 꼬리 등을 집중 공격해 재선충을 사멸시키는 것이다.

▲ 소나무재선충 천적백신 처리 후, 천적백신 지역은 대부분 초록이지만, 미처리구역은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고사한 모습. ⓒ 최병성


산림청은 산림보호법,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 산림병해충 방제규정에 소나무재선충병 관련 '약제 선정'과 '사용승인'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립공원에서 재선충 방제를 위해 천적백신을 사용하려면 산림청의 사용협의나 허가가 필요하다.

산림청이 천적백신의 약제 승인을 하지 않고 있으니, 국립공원측은 번져가는 재선충을 방치하거나 지자체에서 싹쓸이 벌목으로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산림청은 그동안 천적백신을 신뢰할 수 없다며 무시해오다가 올 2월에서야 국립산림과학원과 강원대학교를 통해 경북, 경남, 충북, 충남 4개 시험지역을 선정해 'G810 유기농업자재 소나무재선충병 예방 나무주사 효과 검증'을 시작했다"며 "11월말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9년 산림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2018년까지 재선충에 감염돼 피해를 본 소나무는 총 520만그루가 넘고, 재선충이 국내 처음 발견된 1988년의 이듬해인 1989년부터 30년간 방제로 쏟아부은 예산은 1조3332억원에 달했다.

최 목사는 "만약 산림청이 천적백신의 효과를 진작 검증하고 상용화했다면, 싹쓸이 벌목으로 사라진 수많은 나무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많은 예산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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