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받던 우리글 '한글'로 명명한 주시경 선생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10-09 0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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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광복 위한 문화투쟁 일환으로 '한글운동' 전개
한글 독립성이 곧 국가 독립성..국어문법 체계수립
▲ 주시경 선생
올해로 575돌을 맞은 10월 9일 '한글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셨지만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바로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다. 일제강점기에 대종교인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무력항쟁을 펼치던 때, 주시경 선생은 '언문'으로 불리며 천대받던 우리글에 처음으로 '한글'이라는 이름을 명명했다. 한글은 '으뜸 가는 글', '큰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황해도 평산 출신의 주시경 선생의 호는 '한힌샘' '한흰메라'다. 그는 1897년 배재학당 만국지지(萬國地誌) 특별과를 졸업하고 보통과에 입학해 1900년에 졸업했다. 그는 외래종교를 정신적 사대로 간주하고, 배재학당 졸업 당시 받은 예수교 세례를 버리고 대종교로 개종했다. 이 정신을 기반으로 '어문민족주의'를 구현하고자 했다.

1896년 독립협회 조직에 참여한 주시경 선생은 《독립신문》 교정원으로 일하면서 협성회를 창립해 '협성회보'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또 조선문동식회(朝鮮文同式會)를 결성해 한글 기사체의 통일과 연구에 힘쓰는 한편 여러 학교와 강습소의 교사·강사직을 맡아 한글을 가르치고 보급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1898년 '국어문법'을 완성했고, 1910년 이를 수정·발간하기도 했다.

주시경 선생이 한글운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홍암 나철 선생이 대종교를 일으키면서 내세운 '국수망이도가존'(나라는 망했으나 정신은 살아있다.) 정신이 기반이다. 이는 민족의 흩어진 정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었다. 민족정신의 언어적 구현이 '한글운동'이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1905년 국어연구와 사전 편찬사업에 관한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1907년 어윤적, 이능화 등과 함께 학부(교육부)의 국문연구소 위원이 됐다. 우리말을 '배달글'이라 칭했던 주시경 선생은 후일 이를 '한글'이라 명명했다. 그는 또 한글의 과학적 체계를 수립한 국어학 중흥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가 길러낸 김두봉, 이규영, 최현배, 장지영, 이병기 등의 제자들이 '조선어학회'를 조직해 조국 광복을 위한 문화투쟁으로 한글운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또 1921년에는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중심이 돼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를 창설한데 이어 1933년 드디어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했다. 


일제강점기에 주시경 선생이 운영한 '한글학회' 산하 교육기관인 '한글배곧'에서 만든 무궁화가 한글 졸업장


    마친보람 (졸업증서)
    해.달.날 황선운
    위 사람이 우리 배곧(배우는 곳)고등과의 배감(과정)을 다 마치었기에 이 보람(증서)을 줌

     1917해(년) 3달(월)
     서울 한글 배곧 어른 (원장)
     솔벗메(원장 남형우의 호) 


주시경 선생은 원래 예수교였지만 1907년 대종교로 개종했다. 황성신문 1907년 1월 5일자에 따르면, 당시 예수교였던 주시경 선생은 '1906년 12월 31일 대마도에서 돌아가신 최익현 선생 추도식에 참석한 후 탑골승방에서 돌아오다가 전덕기 목사를 보고 '무력침략과 종교적 정신침략은 어느 것이 더 무섭겠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전 목사는 '정신침략이 더 무섭지'라고 말하자, 주시경 선생은 '그러면 선생이나 나는 벌써 정신침략을 당한 사람이니,그냥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주시경 선생은 과거 사대사상 역시 종교침략의 결과라고 판단해, 대종교로 개종했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 존재로부터 언어가 나오는 것이고, 그 언어는 민족마다 다르다고 봤다. 즉 우리 민족의 언어 '한글'의 독립성이 곧 국가의 독립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긴 것이다.

주시경의 '국어문법'에 '구역은 독립의 基요, 인종은 독립의 體요, 언어는 독립의 性이다. 이 性이 없으면 몸이 없어도 몸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터가 있어도 터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성쇠도 언어의 성쇠에 달려 있고 국가의 存否도 언어의 존부에 달려 있다'라고 돼 있다.

주시경 선생은 또 단군이 백두산을 통치했을 때 다른 인종과 언어가 있지 않았다고 봤다. 그가 국문연구소에 있을 때만 해도 여러 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불가지론의 입장을 주장했지만 이후에 그는 단군시대에 독립된 언어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같은 주시경의 뜻을 받들어 제자들은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연구를 한층 더 진척시켰다. 이병기는 1921년 '신단실기' 교열을 봤고, 권덕규는 '삼일신고'를 한글로 번역했다. 이 두권의 책은 대종교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한글학자들이 참여한 것이다. 최현배, 이병기, 권덕규 모두 대종교인이다.

▲주시경의 '국어문법'(좌)과 '말모이 원고'

주시경은 대종교에 귀의한 후 단군의 실재성을 믿었던 것이다. 그의 제자들 역시 환인·환웅·환검의 삼위일체를 주장했다. 문화적으로는 개천절을 국민적 축제로, 나아가 세계에 홍익인간·이화세계 사상을 펼침으로 대종교 사상을 이해했다. 그리고 언어적으로는 단군시대부터 말과 글이 존재했다고 믿었고, 역사적으로 단군조선을 높이고 기자동래설을 부정했다.

엄혹한 시절에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지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주시경과 그 제자들에게 한배검(단군)은 한줄기 희망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단군을 조선민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몽에 적극 나섰다. 단군을 통해 좌우 이념을 넘어선 민족적 통일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에 바로 이들에 의해 한국의 근대적 사고는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주시경 선생의 저서로는 《국어문법》 《월남망국사》 《한문초습(漢文初習)》 《국어문전음학(國語文典音學)》 《국문초학(國文初學)》 《말의 소리》 등이 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와 같은 역사성을 기리는 날인 동시에 한글운동을 통해 항일 문화투쟁의 선봉에 선 한글학자들의 정신 또한 함께 기려야 할 것이다. 이들이 있어 일제강점기때 '국망도존'의 정신으로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정신을 올곧게 지켜낼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하지만 민족의 얼이 점점 희석되고 있는 요즘, 외래어의 홍수 속에 한글이 설자리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글/ 민인홍
     법무법인 세종 송무지원실 과장
     대종교 총본사 청년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종로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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