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률 최하위 수준..."안보 문제로 다뤄야"
"이대로 가면 1970년대 사라졌던 보릿고개를 다시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기상청장을 끝으로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기상이변과 농업을 주제로 강연과 저술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남재철 서울대학교 농림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우리나라는 기후변화로 2030년 이내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는 특정지역의 평균된 날씨를 말한다. 통상 기후관련 연구자료는 인간의 한 세대인 30년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수시로 변하는 '날씨'와 달리 기후는 원칙적으로 변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기후학자들은 열대지방부터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평균적으로 비슷한 날씨를 갖춘 분포를 각각의 '기후대'로 분류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기후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재철 교수는 "최근들어 100년만의 폭염, 100년만의 폭우와 같은 소식이 수시로 들려온다"면서 "이런 이야기가 매년 나온다는 것은 결국 기록이 갱신되면서 기후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입춘이 되면 봄이 시작하고, 곡우가 되면 비가 내려 망종이 되면 씨앗을 뿌리는 등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 수백년 이어온 24절기 기후 농사법이 하나도 맞지 않게 되면서 '기후변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붕괴되는 먹이사슬···식량위기로 직결
기후가 바뀌면 해당 기후대에 오랜기간 적응해서 살아온 식물, 동물, 미생물들이 모두 피해를 입는다. 대표적으로 신생대 3기부터 수백만년간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고유종 한라산 '구상나무'는 최근 4년간 1만그루 넘게 말라 죽었다. 기후가 변하면서 생육이 왕성해야 할 봄철 기온이 올랐고, 날이 가물면서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수종들이 멸종하고 있는 것이다.
남 교수는 "2020년 겨울은 정말 추웠다"면서 "그러다 2021년 1월~2월 날씨가 매우 따뜻해지면서 벚꽃이 열흘 일찍 개화했고, 그러자 벚꽃 축제를 여는 지자체들이 나무 주변에 얼음을 둘러싸는 등 개화시기를 늦추느라 혼쭐이 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4월에 갑자기 서리가 내리고, 이맘때 피는 아까시나무 꽃들의 개화기간이 절반으로 줄면서 그 꿀을 먹고 사는 벌들의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현재 지구상의 생물종은 총 1400만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하루평균 70여종이 멸종하고 있다. 1년이면 2만5000종, 100년 후면 거의 전체 생물종의 4분의 1이 멸종하게 되는 셈이다. 생물종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중간 생물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연쇄작용이 일어나면서 결국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식량상황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1962년 출판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에 이같은 사태가 이미 예견돼 있다. 남 교수는 "당시 미국은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식량생산에 지장을 주는 병해충 박멸에 힘썼는데, 제초제와 농약으로 곤충을 모두 없애면서 식량 생산은 2~3배 뛰었다"며 "하지만 결국 곤충을 먹고 사는 새가 줄면서 봄이 되니 새소리가 끊긴 '침묵의 봄'이 찾아왔고, 결과적으로 식량 수급에 다시 차질이 빚어졌다"고 말했다.
◇국제분쟁으로 번지는 식량위기···우리는 안전한가?
이처럼 기후변화로 식량위기가 찾아오면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일례로 7월 11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인구의 날'이다. 인류는 지구에 3대 자원 '물, 에너지, 식량'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 50억명을 넘어서면 곳곳에서 자원 확보를 위해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유엔의 분석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국제적인 의제로 삼기 위해 세계 인구가 50억명을 돌파한 1987년 7월 11일을 '세계 인구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남 교수는 "유엔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80억명에 달하는 세계 인구를 놓고 봤을 때 지구가 1.7개가 필요한 셈"이라며 "이집트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 있는 여러 국가들은 사막이 많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2010년 '아랍의 봄' 역시 기후변화로 슈퍼 엘니뇨가 러시아를 덮치면서 대가뭄이 일어났기 때문에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봐도 밀 수출경로가 통제되면서 북아프리카 지역에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식량위기에서 안전한 상황일까.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 45.8%로, 지난해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32위를 기록했다. 축산사료용 곡물자급률까지 따지면 20% 수준까지 떨어진다. 2018년 기준 2100만톤의 곡물을 소비한 우리나라는 한해 1650만톤을 수입한 것이다.
남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곡물 수입량은 5만톤급 벌크선이 매일 1척씩 들어와야 하는 양"이라며 "우리나라는 미국,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몇 개 나라에 곡물을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에 허리케인이 발생하거나 아르헨티나에 가뭄이 들기만 해도 밥상물가가 휘청일 정도로 식량안보지수가 낮다"고 지적했다. 식량위기가 닥치면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1970년대만 해도 국내 식량자급률은 86%에 달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우리나라가 산업화·공업화·전문화되면서 수출로 번 돈으로 식량을 사오는 게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런데 기후변화라는 대충격이 일어나면서 경제학 이론이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식량위기는 안보문제가 돼 버렸다.
◇식량위기는 경제 넘어 국가존망 달린 '안보 문제'
안보라는 단어는 국방이나 외교에서 주로 쓴다. 경제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식량위기도 생존이 걸린 문제이므로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남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싱가포르는 수입 곡물량이 90% 이상이지만 식량안보지수는 굉장히 높다"며 "이유는 곡물수입 국가를 다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싱가포르는 전세계 170개국에서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 곡물가가 아무리 싸더라도 특정지역 의존도를 30% 이상 높이지 않도록 법제화한 것도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남 교수는 또 "최근에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넣자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올해 3월 25일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으로 1년에 2조5000억원 규모의 '기후기금'이 마련될 예정이니만큼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이산화탄소 흡수원 조성을 통해 식량위기와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농민들에 제몫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와 곡물 수입량이 비슷하지만 식량안보지수가 높은 일본의 경우 브라질에서 콩과 옥수수를 수입하더라도 브라질 국토를 장기임차해서 일본인이 농사를 짓도록 하고 있다"며 "관세도 없고, 브라질이 금수조처를 내리더라도 안전하게 식량자원을 수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남 교수는 "이제 기상이변은 상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기상이변이 새로운 평균, 즉 뉴노멀이 된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당장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든다 해도 이미 누적된 배출량만큼 기후변화는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기상이변은 가정이 아닌 확실한 예측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남 교수는 "'언제까지 줄일까'가 아닌 이변에 대응하는 장기적인 계획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남재철 서울대 특임교수 프로필
- 영주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안동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학과
- 서울대학교 대학원 기상학과(석사학위/영국 레딩대 대학원 기상학과(박사수료)
- 서울대학교 대학원 대기과학과(박사학위)
- (현) 한국농림기상학회장
- (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
- (전) 제12대 기상청 청장
- (전)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미세먼지 대책 '국가기후환경회의' 국제협력전문위원
- (전) 기상청 차장, 기상청 수도권기상청장, 세계기상기구(WMO)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 국회기후변화포럼 이사, 한국기상학회 부회장, 국립기상과학원장, 기상청 기상산업정보화국장, 기상청 부산지방기상청장, 미국 기상청 파견 근무
-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 등재(2003-2004)
- 훈포상 : 홍조근정훈장, 국무총리표창, 과학기술처장관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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