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행동' 곤충서 첫 관찰..."지각능력 매우 높아"
나무공을 굴리며 '놀 줄 아는' 호박벌이 포착됐다.
영국 퀸메리대학교 라스 치트카(Lars Chittka) 박사 연구팀은 호박벌이 순전히 재미를 위해 나무로 된 공을 굴리며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물들이 먹이를 찾거나 짝짓기를 하는 등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 없이 순전히 재미만을 위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놀이행동'은 그간 포유류와 조류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곤충에게서 이같은 '놀이행동'이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45마리의 호박벌을 한 실험용 공간에 풀어놓았다. 실험용 공간 한켠에는 벌의 둥지가 있고, 실험용 공간 반대편은 기어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이어진다. 실험용 공간 중앙에는 나무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방'이 있고, 놀이방에서 더 들어간 가장 끝 부분은 꽃가루와 설탕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꿀 뷔페 식당'이 있다.
연구팀은 여러 실험에 걸쳐 호박벌들을 54시간동안 관찰했다. 1번째 실험에서 연구팀은 놀이방을 반으로 나눠 한편은 움직이는 나무공을, 다른 한편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공을 뒀다. 꿀 뷔페 식당을 가기 위해 놀이방을 거쳐야 하는 호박벌들은 50% 더 높은 비율로 움직이는 나무공이 있는 공간을 택했다. 연구팀은 호박벌들이 그저 둥근 물체가 아닌 움직임이 있는 물체를 선호한다고 결론지었다.
2번째 실험에서 연구팀은 처음 20분간 놀이방을 노란색으로 칠했다. 이후 연구팀은 놀이방을 파란색으로 바꾸고, 안에 있던 나무공들을 모두 치웠다. 연구팀은 이같은 과정을 6번 반복해 호박벌들이 노란색과 나무공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학습시켰고, 마지막에는 놀이방을 노란색 통로와 파란색 통로로 나눴다. 그 결과 3분의 1 더 많은 수의 호박벌들이 꿀 뷔페 식당에 가기 위해 노란색 통로를 선택했다.
실험 전반적으로 봤을 때 나무공을 1번 굴리고 만 호박벌 개체가 있는가 하면 보상을 마다하고 많게는 나무공을 117번이나 굴린 개체도 있었다. 젊은 호박벌들이 나이 든 호박벌들보다 공을 돌린 횟수가 더 많았다. 이는 어린아이나 새끼 포유류와 조류가 가장 활동적으로 놀이행동을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또 수컷 호박벌이 암컷 호박벌에 비해 더 많은 시간 공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호박벌이 훈련이나 먹이 보상 없이 즉흥적이고 자발적으로 공을 반복해서 굴리는 것은 다른 큰 동물들이 보이는 놀이 행동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논문 제1 저자인 사마디 갈파이지는 "호박벌들은 이 '장난감'에 계속 달라붙어 놀았다"면서 "작은 몸집과 두뇌를 갖췄지만 초보적이기는 해도 다른 큰 동물들처럼 일종의 긍정적 정서 상태를 경험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벌의 마음'(The Mind of a Bee)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한 치트카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곤충의 지각능력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다는 점을 강력히 나타낸다"면서 "곤충은 기존에 생각도 감각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생물과는 아주 거리가 멀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추가됐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논문은 지난 19일 학술지 '동물행동'(Animal Behaviour)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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