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가 아닌 다음세대 항체 형성시키는 방식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꿀벌용 백신' 사용이 허가됐다.
4일(현지시간) 미국 농무부(USDA)는 미국 생명공학기업 달란 애니멀 헬스'(Dalan Animal Health)가 개발한 '미국 부저병'(AFB) 백신 사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꿀벌 예방백신 사용이 허가된 것은 세계 처음이다.
'미국 부저병'은 꿀벌에게 가장 치명적인 세균성 질병으로, 최근 기후위기로 꿀벌 면역성이 저하되면서 전세계로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꿀벌 개체수 감소로 식량안보까지 위협받을까 우려해 백신사용을 허가함으로써 꿀벌살리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부저병'은 꿀벌 애벌레에 병원균이 침투해 몸을 썩게 만드는 질병이다. 감염된 애벌레는 악취가 나는 갈색 액체로 문드러진다. 이로 인해 벌집과 봉군이 무너지고 종국에는 군락 전체가 말라죽는다. 감염이 확인되는 즉시 벌집과 양봉기구를 통째로 불태워야 한다.
미국은 현재 전체 꿀벌 군락의 4분의 1이 이 질병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 중부지방에서 처음 발생해 당시 국내 양봉을 궤멸시킬 정도의 피해를 입힌 바 있다.
'미국 부저병'은 아직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 달란 애니멀 헬스가 개발한 꿀벌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라 예방약이다. 또 기존 치료제들처럼 꿀벌에 직접 주사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백신은 여왕벌이 먹는 로열젤리에 살처분된 미국 부저병 병원균을 주입해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 태어난 유충이 항체를 보유하도록 해서 질병을 예방한다. 다음 세대로 면역물질을 물려주는 이같은 방식은 꿀벌뿐 아니라 새우, 밀웜 등 다른 절지동물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꽃가루받이 활동을 하는 꿀벌같은 곤충은 농작물 수확량과 직결돼 있어 개체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식량안보 문제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식량자원의 3분의1 이상을 꿀벌에게 직·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꿀벌 개체수는 전세계적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원인은 기후변화, 제초제와 방제약 남용, 개간으로 인한 밀원식물 감소 등 인간활동으로 꿀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기생충과 질병이 창궐한 탓이다.
아르헨티나의 한 연구에 따르면 2015년 전세계에서 목격된 야생꿀벌 종류는 1990년 대비 25% 감소했다. 2017년 유엔(UN)은 전세계 벌의 3분의 1이 '멸종위기'라고 발표했고,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지금 속도대로 가면 꿀벌이 2035년에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학교 새뮤얼 마이어스(Samuel Myers) 교수는 꿀벌이 사라지면 해마다 영양실조로 142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미국 부저병' 백신은 앞으로 꿀벌 개체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캘리포니아주 양봉협회 이사 트레버 타우저(Trevor Tauzer)는 이번 백신 도입에 대해 "그동안 봉군 전체에 적용하기에 효용성도 떨어지고,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던 항생제 처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양봉가들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진전"이라며 "벌집 차원에서 예방이 가능하다면 값비싼 항생제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 질병관리 외에 꿀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여력을 쏟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네트 클라이저(Annette Kleiser) 달란 최고경영자(CEO)는 "세계적인 인구증가 추이와 기후위기를 볼 때 식량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꿀벌의 꽃가루받이 기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우리 백신이 꿀벌 보호의 '돌파구' 역할을 해서 전세계 식량생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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