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소방관들이 마당에 묶여있던 반려동물들의 목줄을 풀어준 덕분에 동물 피해가 적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3일 강릉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동물 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탈출하다가 차에 치여 죽은 반려견 1마리와 줄에 묶인 채 숨진 반려견 2마리가 반려동물 피해의 전부라고 밝혔다. 이밖에 사육장에서 기르는 닭이나 염소 등 축산동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형산불은 순식간에 주택을 덮치기 때문에 몸을 피신하기 바빠 목줄이 묶인 반려견들이 그대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빈번하다. 하지만 이번 강릉산불 피해현장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보통 산불피해현장을 가면 검게 그을리거나 살갗이 벗겨진 채로 경계심을 풀지 못한 동물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번 산불현장에서는 불에 탄 개집이나 우리만 있을 뿐 유실동물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은 "산불이 나면 대개 줄에 묶인 반려견들이 피해를 보는데, 소방대원들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목줄을 다 제거해주셨다고 하더라"며 "예상외로 동물 피해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안도했다.
동자연은 산불 당일 '목줄에 묶인 채 꼬리를 다리 사이로 숨기며 덜덜 떠는 개들'이나 '가까스로 불은 피했지만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우왕좌왕하며 헤매던 개'를 봤다는 주민 목격담을 토대로 추가 피해를 확인하고자 마을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다.
동물명예보호감시원들과 지역 동물협회 관계자들이 유실 동물을 발견해 보호소에 신고하면, 보호소는 동물을 넘겨받아 보호하다가 주인에게 돌려보내고 있다. 보호소는 현재까지 반려견 9마리, 반려묘 1마리 등 10마리를 보호했다. 이 가운데 이번 산불로 목숨을 잃은 80대 주민의 반려견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을을 헤매는 모습이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보호소 관계자는 "입가에 조금 상처를 입거나 털이 그을린 아이가 있었으나 보통은 건강한 상태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화재로 세워진 임시대피소가 이재민들과 반려동물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에서 이전보다 동물보호 의식이 한층 성숙해졌다고 평가했다.
송 팀장은 "이재민들이 대피소로 이동할 때 반려동물을 집에 두고 와야 하는 아픈 현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데리고 있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며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갈등이 있을 수 있어 반려동물을 돌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산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동물 피해에 대한 메뉴얼은 없다. 임시대피소에 반려인이 출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규정이 없어 산불이 난 현장에선 이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송 팀장은 "매뉴얼은 없지만 동물보호감시원들과 지역 동물협회, 지자체가 나름의 방식대로 시스템을 구축해서 동물보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감명받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사례를 본보기 삼아 매뉴얼을 만들고, 전문 동물구호 기관 선정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과 이에 걸맞은 역량 구축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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