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권 가운데 처음으로 '넷제로 전환계획'을 발간한 영국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탄소 고배출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탄소배출이 높은 기업들에게 거래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셀린 허바이저(Celine Herweijer) HSBC 최고지속가능성 이사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탄소중립 포트폴리오의 수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같다"고 말했다. 즉 탄소배출량이 높은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방법으로만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화석연료 산업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점점 더 반발하고 있다"며 "이들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고객을 장부에서 제외한다고 해서 실제 탄소배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들의 탈탄소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허바이저 이사는 "전환 과정에서 금융부문의 역할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산업 전반의 고객 그리고 이러한 고객에게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닥칠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후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탄소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는 주요 원인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자금지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비판에 허바이저 이사는 "HSBC는 탄소중립을 향한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더라도 고배출 고객과 계속 협력할 의향이 있다"며 "우리는 고배출 업체를 탈탄소화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변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가령 전력 부분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방법은 되레 아시아의 고배출 전력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유럽쪽 기업들은 이미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중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허바이저 이사는 "우리는 아시아 전역의 일부 대형 전력 생산업체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의 재생에너지 전환 능력에 따라 전세계 전력 부분의 탄소중립 여부가 갈릴 것이다"고 덧붙였다.
다만 HSBC는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의 권고에 따라 신규 유전 및 가스전에 대한 자금 조달을 중단할 예정이다"며 "2040년까지 화력 발전과 석탄에 대한 금융 지원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HSBC는 2030년까지 전력 부분 금융 대출의 탄소 집약도를 7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HSBC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태양열과 풍력 발전의 가속화, 화력 발전소의 퇴출,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엘 퀸(Noel Quinn) CEO는 보고서를 통해 "HSBC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 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실물경제의 탈탄소화 속도와 고객의 전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허바이저 이사는 "시멘트 등 몇몇 산업 분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기존 기술을 획기적으로 확장하지 않으면 현재의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또 "시멘트업계가 현재 투자하고 있는 기술이 매우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들과의 협력을 끊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멘트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를 차지하지만, 탄소포집, 청정에너지 사용 등 여러 탄소중립 방안도 존재한다. 따라서 은행은 시멘트 기업이 탄소중립 방안을 선택하도록 유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바이저 이사는 "석탄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단기적으로는 석탄관련 배출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더라도 석탄의 조기퇴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그래야 실제 배출량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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