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권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가 커진 직접적인 원인으로 '건조한 대기'와 '강풍'이 지목된 가운데, 본격적인 영농 준비가 이뤄지는 시기인데다 4월 4일 '청명'과 4월 5일 '한식'이 다가옴에 따라 이같은 사태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현철 한국산불학회장은 31일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이번 초대형 산불과 같은 수준의 산불이 얼마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단 불이 붙으면 고온·건조한 봄철 날씨에 강풍까지 겹쳐 언제든 화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산불 발화 자체를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산불이 역대급 피해로 이어진 것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봄철의 고온·건조한 날씨와 강풍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의성의 평년 1월 강수량은 15.5㎜지만 올해는 7.4㎜로 절반 수준에 그쳤고, 2월 강수량은 4.8㎜로 평년(22.6㎜)의 21% 수준에 불과했다. 바짝 마른 숲은 작은 불씨에도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산불 규모를 키운다.
건초더미나 다름없는 산림에 붙은 불은 강풍이 부채질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확산됐다. 지난 25일 경북 안동에는 최대 풍속 26.7m/s의 강풍이 불어 시간당 8.2㎞ 속도로 산불이 확산됐다. 이한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차장은 "이번 산불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초대형, 초고속 산불"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는 대형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기상조건은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31일 오전 4시 기준 수도권과 강원동해안, 강원남부내륙·산지, 충청권내륙, 광주·전라동부, 경상권에는 '건조특보'가 발효됐다. 오는 4월 2일 수도권과 충북 등 서쪽 지역에는 약한 비가 오지만, 산불 위험 지역인 동쪽에는 4월 둘째주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보됐다.
이에 더해 전날 오후까지 경남 남해안과 일부 경남내륙을 중심으로 순간풍속 55㎞/h 내외의 강한 바람이 불었으며, 오는 토요일에도 비슷한 수준의 강풍이 불 것으로 예측됐다.
산불이 발생하기 딱 좋은 환경인데도 야산이나 들판에서 불을 피우는 위험한 행위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전국에서 4월 초 발생한 산불 원인으로 소각 행위(27.3%)가 가장 많았다. 이밖에도 입산자 실화(18.2%), 성묘객 실화(9.1%) 등 부주의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역대 가장 큰 피해를 기록한 경북 의성 산불도 성묘객의 실화에서 시작됐고, 경남 산청 산불은 예초기 불씨에서 비롯됐다.
의성 산불은 7일만에 진화했고 산청 산불은 10일만에 진화했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31일에도 쓰레기를 소각하다 불을 내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1시께 전남 해남군에서는 주민이 쓰레기를 소각하다 불씨가 튀어 산불로 이어질 뻔하는 가슴철렁한 사건이 있었고, 전날 오전 광주 광산구에서도 갈대밭에서 폐기물을 태우다가 1100평방미터(㎡)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청명·한식이 다가오면서 농민들이 농사준비를 위해 논·밭두렁에 영농 부산물을 불법 소각하는 일도 늘고 있다. 경남 산림부서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영농 부산물이나 폐기물 불법 소각은 관행처럼 이어져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르신들이 공무원들이나 산불감시원 퇴근 시간을 다 알다 보니 연기가 보이지 않는 일몰 이후 소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국 지자체들은 주요 산림지역 인근 소각 행위를 일정 금지하고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등 강화된 산불 대비태세를 이어가면서 산불방지 특별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문 학회장은 "단 1명의 부주의로 수십명이 죽고 수천명이 눈물을 흘렸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산에서의 소각 행위를 주민들이 서로 감시하고 신고하는 체계가 일상생활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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