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이 포장 용기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곳은 어딜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ience Advance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5년까지 플라스틱 산업분포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포장용기'였고, 그 다음으로 '건축·건설' 산업이었다.
건축자재를 연구해온 최혜정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30일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대부분 플라스틱을 단순 마감재 정도로 인식하는데 파이프, 벽지, 마룻바닥 등 플라스틱이 안쓰이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플라스틱 건축자재가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꼬집으며 "플라스틱 생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 재료 자체에 대한 이해없이는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최 교수는 국내 플라스틱 연구가 더딘 것이 짧은 역사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최근 현존하는 건축자재의 역사와 특성을 연구한 '건축 자재산업네트워크' 연구과제를 진행했다.
플라스틱은 20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개발, 생산됐다. 이 과정에서 서구는 플라스틱에 관한 연구를 충분히 진행했지만 우리나라는 1960년대 산업화 시기에 플라스틱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다보니 국내 플라스틱 산업계는 '생산'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최 교수는 "이런 역사적 요인 때문에 플라스틱의 분리 및 재활용 체계는 다른 건축자재보다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콘크리트, 철, 유리, 나무 등의 건축재료는 20세기들어 운반·가공·실험·합성 등에서 크게 기술발전을 이뤘지만 플라스틱 건축자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건축자재들과 달리, 플라스틱만이 가지는 특성도 분리 및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데 애로사항이 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물질이다. 다른 건축 재료들이 자연에서 채취돼 가공을 거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화학물질인 플라스틱은 어떤 물질과도 잘 섞인다. 이 때문에 유리와 목재는 물론이고 콘크리트와 섞은 플라스틱류 건축자재들이 생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섞어버리면 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순수한 강철은 녹여서 다시 재활용할 수 있지만 플라스틱은 섞이는 순간 따로 분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않다. 대표적으로 플라스틱 래미네이트나 코팅으로 제작 마감이 되는 부엌가구, 창호, 문 등이 있다.
최 교수는 "플라스틱 생애에 대한 이해는 소비자들에게 환경을 위한 선택권을 넓힌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이 섞인 자재와 친환경 인증제도를 받은 건축자재 사이에서 고민할 때 플라스틱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환경에 더욱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국내에서도 건축자재 플라스틱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탄소중립 관련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최 교수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기후미술관:우리집의 생애'를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당면한 '기후위기'라는 큰 틀에서 생명체인 집에 대한 내용을 그래픽과 영상 자료를 활용해 다채롭게 담아냈다.
집은 크게 '비극의 오이코스' '집의 체계: 짓는 집-부수는 집' 'B-플렉스' 등 3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에서 작가, 활동가, 과학자, 건축가가 바다 사막화, 빙하 소실, 해수면 상승, 자원 착취, 폐기물 식민주의, 부동산 논리의 환경 폐해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회는 오는 8월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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