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남미에 사는 조류명은 왜 유럽식 이름일까?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1-05 13:12:30
  • -
  • +
  • 인쇄
서구 영어권 연구 독·과점 '과학 식민주의' 심각
윤리적인 협력체계 세워야 기후위기 제때 대응


전세계 과학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저나오고 있다.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과학연구 영역에서 여전히 배제당한 채 연구정보를 찬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이같은 식민주의적 잔재는 정보유통을 가로막아 기후위기 대응에도 차질을 빚게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학교의 누사이바 라자(Nussaïbah Raja) 연구원과 영국 버밍엄대학교 에마 던(Emma Dunne) 박사가 주도한 국제연구팀은 "화석 데이터의 97%가 북미나 서유럽 데이터베이스(DB)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고생물학 지식생산에 대한 독·과점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러한 지식의 불균형은 서구권 과학자들이 식민주의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 까닭이라고 비판했다. 과학자들이 타국에서 조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물을 본국의 연구소로 가져가 버리면 정작 연구가 진행됐던 곳의 시민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구팀은 무장공비처럼 별안간 들이닥쳐 조사결과를 가로채고 사라지는 과학자들을 더러 '낙하산 과학자'로 명명했다.

낙하산 과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호박 속에서 발견되는 화석이 풍부한 미얀마나 도미니카공화국, 척추동물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모로코 등지는 서구권 연구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한곳으로 몰리면서 특정지역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많은 연구결과가 기술되거나 특정 연구분야에 지나치게 많은 지원자금이 몰리고, 연구 샘플을 독점하기 위한 화석 밀매까지 성행하면서 법적 문제나 인권침해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이번 연구논문의 공동저자 누사이바 라자 연구원은 특히 본인의 연구분야인 산호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산호초는 지구온난화로 조만간 99%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바닷물의 수온이 상승하고, 이산화탄소 흡수 용량이 초과되면서 해양 산성도는 역대급으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면서 죽어가는 '산호 표백' 현상이 일어난다. 모든 해양 생물종의 3분의 1은 산호초에 의존해 살아가며, 전세계 5억명 이상이 관광과 어업 등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산호초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산호초 서식지 환경의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그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산호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같은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연구의 기반이 되는 산호초 화석에 대한 정보가 편향되거나 유통이 제한되면서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도출된 연구결과마저 왜곡될 수 있다.

과학관련 정보를 담는 언어도 문제시되고 있다. 국제논문이나 과학서적이 영어로 기술되는 탓에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출신의 연구자들이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아 정보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럽의 식민지배를 당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조류는 대부분 유럽식 성씨를 따 이름붙여졌다. 이에 최근 노예제를 옹호한 이들의 이름을 딴 150개 조류종의 명칭을 개정하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현재 과학계의 관행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연구결과를 왜곡시킨다"면서 "윤리적인 협력체계를 세워야할 필요가 있다"며 소외당한 현지 연구자들이 학계에 발붙일 수 있는 경로나 자금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해당 연구논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게재됐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ESG 정책 중 '기본법 제정'과 '공시 의무화' 가장 시급해"

ESG 정책 가운데 기본법 제정과 공시 의무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 기업들의 목소리다.한국ESG경영개발원(KEMI)은 지난 17일 여의도 FKI타워 파인홀에서

한숨돌린 삼성전자...이재용 사법리스크 9년만에 털었다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의 무죄가 확정되면서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9년째 이어지던 '사법리스크'를 털어냈다. 그동안 1주일에 두번씩 법정에 출두

"잔반 없으면 탄소포인트 지급"...현대그린푸드, 단체급식에 '잔반제로' 보상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가 '탄소중립포인트' 제도에 신설된 '잔반제로' 항목을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실제 단체급식 사업장에

"노사 칸막이 없는 문화"…LG CNS '노사문화 우수기업'에 선정

AX전문기업 LG CNS가 상호 존중과 대화, 협력을 바탕으로 한 모범적 노사문화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2025년 노사문화 우수기

KB국민은행, 금융취약계층 위한 '도움드림창구' 운영한다

KB국민은행이 금융취약계층을 위해 '도움드림창구'를 새롭게 운영한다.KB국민은행은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은 물론 7세 이하 자녀를 동반한 보호자

기아, 오토랜드화성 사업장에 PPA 재생에너지 첫 도입

기아가 국내 사업장 중 처음으로 오토랜드화성에 재생에너지 전력을 도입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재생에너지 전력은 지난 2월 한국남동발전과 체결한

기후/환경

+

농경지 1만3000ha 침수 피해…'극한호우'에 밥상물가도 '비상'

한달치 비가 하루에 쏟아지는 '극한호우'로 전국의 농경지 1만3000헥타르(ha)가 침수되면서 농산물 가격폭등이 예상되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브라질 의회 '환경허가 완화법' 의결..."환경규제 사실상 붕괴"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는 브라질에서 환경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환경허가 완화법'이 의회를 통과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

경기도민 절반 '장마철 피해대처 방법' 모른다...소득별 정보격차 커

경기도민의 절반은 장마철 피해를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저소득층의 재해대응 인지도는 고소득층보다 25.

美 재생에너지 심사는 '깐깐하게' 석탄재 정화규제는 '느슨하게'

미국 정부가 풍력·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는 강화하면서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유독성 석탄재의 정화 시한은 늦추기로 하는 등 재

역대급 '극한호우'...왜 충청과 남부에 비구름대 몰리나?

지난 16일부터 충청권과 남부지역을 강타하고 인명피해까지 낸 폭우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로 심화된 '대기의 강' 현상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18일 기상

中 흑연에 93.5% 관세 결정…美 전기차 가격인상 불가피

미국 상무부가 중국산 흑연에 93.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이번 조치가 미국에서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