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하락에 스타벅스, 이마트 불매운동으로 확산
멸공(滅共).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이 말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반공과 멸공을 정권유지 수단으로 삼던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멸공'이라는 단어도 묻혀갔다.
30여년간 거의 쓰이지 않던 이 단어가 최근 다시 등장하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발단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멸공' 해시태그를 달면서부터 비롯됐다. 얼마전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이 들어간 기사를 링크하면서 '멸공' 해시태그를 달았고, 최근에는 멸치와 콩 사진을 올리면서 또다시 '멸공' 해시태그를 달았다.
정 부회장의 '멸공' 해시태그는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멸공 해시태그를 달았고, 나경원과 최재형 등 국민의힘 유력 정치인들이 '멸공 챌린지'에 합류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 부회장은 중국 사업을 의식했는지 "나에게 멸공은 중국과는 상관없는 우리 위에 사는 애들(북한을 의미)에 대한 것"이라며 "북한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한국기업이 저평가를 받아 사업하기 힘들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현재 신세계 이마트는 중국에서 철수했지만 신세계인터내셔널은 중국에서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다. 면세점 역시 중국과 뗄 수 없는 사업이다. 하지만 시진핑 사진을 게시했다는 점에서 정 부회장의 해명은 궁색해보인다.
그리고 과연 그의 말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한국기업이 저평가받고 있는 것일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남북 관계' 외에도 '지배구조와 회계의 불투명성'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다양하게 꼽힌다. 북한도 한 요인일 수 있지만 그보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불투명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의견이 많다.
제프리 존스 주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은 북한 위협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없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이 투명하지 않고 회사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기 때문이고,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기업'과 '오너'에 있는 셈이다. 정 부회장 본인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자신이 외친 '멸공'이 '오너리스크'로 작용하면서 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얼마나 하락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10일 신세계그룹 계열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하루만에 2000억원이 증발됐다.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뿐 아니라 스타벅스와 이마트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스타벅스와 이마트의 연간 이익은 800억원대로 그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짜기업들이다. 본인이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 대가를 기업과 주주들이 치루고 있다.
이마트 노조는 "고객과 국민에게 분란을 일으키고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정 부회장의 언행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여파가 수만명의 신세계, 이마트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미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오너 리스크'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9월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였던 정 부회장은 보유지분 전량을 당시 주가보다 20% 비싼 가격(경영권 프리미엄)에 신세계에 매각하면서 2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얻었다. 이후 광주신세계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주들은 고스란히 손실을 봐야했다. 또 수년전에는 벤츠버스를 타고 버스전용차선으로 출근하는 사진을 소셜서비스(SNS)에 올리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오너 리스크'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꼬집는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가 기업 경영의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업에서 '오너 리스크'는 가장 큰 디스카운트 원인"이라며 "특히 정 부회장의 이번 행동은 전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욱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최근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신세계그룹 역시 모든 상장사에 ESG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ESG 경영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룹 오너가 철 지난 단어로 사회 분열을 야기하고, 기업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ESG위원회가 무슨 소용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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