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수소, 재생에너지 등 투자액 27%
재계의 투자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5월말 10대그룹(금융업종인 농협 제외)과 CJ, 두산, 코오롱 등 13개 그룹은 일제히 3~5년간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의 투자규모를 합치면 1080조원이나 된다. 특이한 사실은 과거와 달리 '친환경 사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사업별 투자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삼성을 제외한 12개 그룹이 친환경 모빌리티와 배터리, 소형모듈원전(SMR),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기술 등 친환경 분야의 투자규모가 총 167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12개 그룹 전체 투자금 약 630조원 가운데 27% 비중이다. 여기에 삼성 투자금 450조원 가운데 친환경 사업투자금까지 합치면 '168조+α'가 되는 셈이다.
친환경 관련 사업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그룹은 국내 ESG경영 선도그룹으로 꼽히는 SK다. SK그룹은 전기차 배터리와 분리막 생산설비 증설, 수소·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설비를 갖추는 데 67조4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포스코도 철강 사업의 친환경 생산체제 전환에 20조원, 이차전지와 수소 등 친환경 소재 사업에 5조3000억원 등 총 30조3000억원을 친환경 분야에 투자한다.
GS는 SMR·암모니아·신재생 사업 등에 18조원을 투자하고, 현대차는 친환경자동차·수소연료전지 등에 16조2000억원, LG는 배터리와 배터리소재, 친환경 소재에 11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한화그룹은 태양광과 풍력 등 에너지(4조2000억원)와 친환경 소재(2조1000억원), 탄소중립 기술(9000억원) 확보에 7조2000억원을, 현대중공업은 친환경 선박기자재와 탄소감축 기술에 7조원을 쏟아붓는다. 두산그룹은 SMR,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사업에 5조원을 투자한다.
롯데그룹도 전기차 충전 인프라 등 친환경 모빌리티와 수소, 전지 소재, 리사이클과 바이오 플라스틱 사업 등에 약 3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CJ는 친환경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PHA) 등 웰니스와 지속가능성 분야에 1조원 이상, 코오롱그룹은 풍력발전과 연료전지 소재, 수소 등 그린에너지 분야에 총 9000억원을 투자한다.
이처럼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친환경과 기업의 수익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성'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동안 사회공헌이나 이미지 제고 차원으로 ESG경영에 접근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사업과 연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조신 연세대학교 교수는 "ESG는 투자에서 비롯된 개념이고, 투자자들은 수익을 원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기업들 역시 이런 것을 느끼면서 관련된 사업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자자들은 ESG경영을 한다고 해서 무작정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며 "기업은 결국 환경이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혁신이나 기술 등을 통해 이윤도 추구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친환경 사업'이라는 유행에 편승해 뛰어들었다가 수익을 얻지 못해 포기할 경우 '그린 워싱'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한 많은 친환경 사업은 아직 초기단계로 시장규모가 얼마나 될지, 얼마나 빨리 수익을 확보할 지 알기 어렵다"며 "앞으로 친환경 사업을 하겠다는 기업은 점점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 제대로 꼼꼼하게 사업성을 살피지 않고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들어갔다가 포기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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