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30억마리가 넘는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매년 반복되지 않으려면 현재 국내의 밀원면적으로 2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8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이 '세계 벌의 날'을 이틀 앞두고 발간한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반복되는 꿀벌 집단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밀원 면적을 30만헥타르(ha)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양봉협회는 지난달 기준 협회 소속 농가 벌통 153만7000여개 가운데 61%인 94만4000여개가 폐사한 것으로 추산했다. 통상 벌통 1개에 꿀벌 1만5000~2만5000마리가 있으니 141억6000마리에서 236억마리의 꿀벌이 죽은 셈이다. 지난해 폐사한 100억마리보다 피해규모가 2배 이상 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2000년대 중반 발생한 '꿀벌군집붕괴현상'(CCD)과 유사한 상황이 현재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꿀벌 집단폐사 원인을 '질병과 살충제, 기생충, 기후변화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일례로 2018년 유럽 10개국은 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을 전면 금지했지만 이후에도 꿀벌의 집단폐사 현상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한가지 원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꿀벌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원인은 '기후변화'로 꼽고 있다.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200여년만에 1.09℃ 상승하면서 벌이 동면에서 깨기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봄꽃 개화일은 과거 1950~2010년대보다 3~9일 빨라졌다.
보고서는 "겨울철 온난화와 이상기상 현상 증가는 월동기 꿀벌에게 치명적"이라며 "재작년 10월 초순까지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가 10월 중순 갑자기 10℃ 이상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월동을 준비하던 꿀벌에게 혼선을 줬고 이후엔 12월말까지 기온이 높다가 25일 기온이 급락해 꿀벌이 월동에 들어가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 꿀벌에게 닥친 가장 시급한 문제로 '밀원 부족'을 꼽았다. 밀원은 벌이 꿀과 꽃가루 등 먹이를 얻을 수 있는 식물을 말한다. 꿀벌 생존에 필수 요소다. 하지만 이 밀원은 지난 수 십 년동안 빠르게 감소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밀원 면적은 1970~80년대보다 약 70%나 감소했다.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지면서 밀원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빈번한 산불로 밀원식물이 대량 소실된 탓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천연꿀 생산의 70%를 '아까시나무'에 의존하는 등 밀원식물 종류가 한정적인 경우에는 이상기후로 꿀벌이 꿀을 모을 시기를 놓치면 1년동안 사료로만 버텨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밀원식물이 줄어드는 반면 꿀벌 사육봉군 밀도는 더 높아졌다. 우리나라 사육봉군 밀도는 1평방킬로미터(㎢)당 21.8봉군으로 전세계 1위다. 그만큼 먹이 경쟁이 치열해져 영양분 확보가 어려워지고, 이는 집단폐사 현상을 더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밀원 면적을 2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애벌레를 꿀벌 성충으로 키우는데 필요한 꿀은 300㎎, 꽃가루는 130㎎ 이상이 필요하다. 벌통 1개에서 태어나는 꿀벌은 연간 약 15만마리로, 성충이 된 꿀벌들이 소비하는 양까지 합치면 봉군 1개당 약 60㎏의 꿀이 소모되는 셈이다. 국내에서 양봉되는 꿀벌 봉군수가 250만군 이상에 3~10만군의 재래꿀벌, 야생벌 등을 감안하면 최소 9만톤(t)의 꿀이 필요하다. 밀원 1ha에서 생산되는 꿀이 통상 300㎏ 정도이므로, 30만ha의 밀원면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현재 국내 밀원면적은 15만3381ha로 필요 면적의 절반 수준이다. 산림청은 매년 약 3800ha씩 밀원면적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30만ha 밀원을 확보하는데 최소 4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피스와 안동대 연구진은 밀원 확보를 위해 '생태계 서비스 직불제'를 마련해 국내 산림면적의 66%를 차지하는 사유림에 밀원을 조성할 경우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생태계 서비스직불제는 보호지역이나 생태우수지역 토지소유자가 '인간이 생태계로부터 얻는 모든 혜택'을 유지·증진하는 활동을 하면 국가가 혜택을 주는 제도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벌을 가축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화분매개체 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며 "꿀벌의 집단폐사는 기후위기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기후위기 대응에도 더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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