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규제에 갇혀있는 사이, 미국과 일본은 탄소감축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도 이제 탄소중립을 규제가 아닌 산업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8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산업 성장지향형 탄소중립 정책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정책 목표는 있지만 그것을 달성할 현실적인 전략과 시장이 없다"며 "압박만 존재하는 규제 대신 수요를 창출하고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지금의 로드맵은 대부분 지킬 수 없고, 탄소포집기술(CCUS)이나 국제감축 같은 핵심 분야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조 교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EU)의 탄소중립 산업법, 일본의 녹색전환(GX:Green Transformation) 추진전략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세계는 탄소중립을 산업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며 "미국은 보호무역주의 아래 자국 밸류체인을 되살리는 전략을 쓰고 있으며, 독일 역시 밸류체인 상실이 성장 저하로 이어졌는데, 우리는 정치적 표심을 위해 비효율적 분산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가 사례로 언급한 일본의 'GX 전략'은 탈탄소화를 추진하면서도 산업의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성장전략으로, 보조금, 세제 혜택, 금융지원을 연계해 기업의 자발적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정책은 배출권거래제와 감축목표 설정에 집중돼 있는 구조인 반면 일본과 미국 등은 민간투자와 산업 유인에 무게를 둔 성장지향형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장현숙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실장도 일본의 GX 전략을 사례로 들며 "일본은 탄소중립이 성장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 아래 철저히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150조엔 규모의 민관투자계획을 바탕으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일본의 배출권거래제는 우리나라와 달리 강제 참여가 아닌 자발적 참여 방식으로 운영된다. 장 실장은 "이처럼 규제가 아니라 유인을 통해 기업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큰 정책 차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는 10년 넘게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했지만 아직도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정책 설계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 모두 "지금처럼 규제 중심 구조로는 산업전환이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조 교수는 "GX 지원법 제정과 산업 정책 기본법 정비가 시급하며, 대통령 최고 아젠다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고, 장 실장은 "금융과 산업이 연계된 체계적 인프라 조성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탄소중립을 둘러싼 글로벌 전략이 '규제'에서 '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 한국 역시 산업 중심의 정책 전환 없이는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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