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자동차 등 핵심 수출품목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타결한 것에 대해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일본경제신문,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이 가장 적은 대가로 가장 많은 것을 얻었다고 평가하면서, 관세와 투자 모두에서 교묘한 타협안을 이끌어낸 점에 주목했다. 일본은 쌀과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에 15% 단일관세를 부과하는 대신 미국산 자동차·트럭·쌀·농산물을 일본에 추가 수출하기로 했다. 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 미국 내 프로젝트에도 공동투자하기로 했다. 당초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협상의 표면적인 내용만 보면 미국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서비스(SNS)를 통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협상", "미국이 90% 이익을 가져간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일본이 미국에 약속한 5500억달러(약 753조)의 투자액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기업들이 이미 계획하고 있는 미국 투자액이 재포장된 것이다.
또 이번 관세협상에서 일본은 미국산 쌀을 추가로 수입하기로 약속했지만 기존 '최소수입물량(minimum access)'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 자국 농업계 반발도 최소화시켰다. 안전기준 완화를 통해 미국산 자동차 수입을 허용했지만 자국 자동차 수출은 물량 제한없이 15% 단일 관세를 적용받기로 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세계 최초의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수석협상관은 "국익을 지키며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강조하며, 이 전략을 "서두르되 천천히"라고 표현했다. 그는 협상 직후 "#미션완수"라는 글과 함께 백악관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경제신문은 "트럼프의 '섹터별 고관세' 원칙을 무너뜨리고 자동차에 단일 관세를 적용받은 것은 전례없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외신들도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이 당초 내줄 것으로 예상됐던 카드 대부분을 지켜냈다"고 평가했고, CNN은 "일본은 결국 잃은 건 거의 없고, 트럼프가 내세울 명분만 만들어준 셈"이라고 일갈했다.
정치적으로도 일본은 협상을 통한 '최악 회피'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총선 참패 직후 협상에 나선 이시바 총리는 "관세를 낮추고 일자리를 만들며, 국제사회에서 공동의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를 마지막 성과로 삼고 퇴진을 고려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국제정세 분석회사 유라시아그룹의 데이비드 볼링은 "카드는 불리했지만, 일본은 게임을 끝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한일 관세협상은 협상을 앞둔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외형상 미국이 주도한 합의처럼 보이지만, 일본은 실질적 양보없이 실익을 확보했다. 외신들은 "트럼프가 내세운 수치는 과장됐고, 일본은 피해를 최소화하며 자신들의 투자와 수출을 보장받았다"고 분석했다. 유사한 상황에 직면한 한국 역시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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